[최병일의 북토피아] 이것은 혼모노(진품) 일까, 아니면 니세모노(가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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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북토피아] 이것은 혼모노(진품) 일까, 아니면 니세모노(가짜)일까

뉴스컬처 2025-11-13 12:48: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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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북토피아 

혼모노/성해나지음/창비

[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이것은 혼모노일까, 아니면 니세모노일까”

혼모노(ほんもの).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뜻한다. 일본 문화에서 이 단어는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저 사람은 진짜 혼모노다”라고 말하면, 그 분야에서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한국으로 건너오면 풍경이 달라진다. 이제 ‘혼모노’는 비상식적이고 집착적인 오타쿠를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진짜는 진품에서 비정상으로, 찬사에서 조롱으로 변모했다.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는 바로 그 변이의 지점에서 출발한다. 표제작을 비롯해 일곱 편의 단편이 한 목소리로 묻는다.
“진짜란 무엇인가.”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진짜는 존재하기나 하는가.”
이 책에는 서로 다른 얼굴들이 등장한다. 영화감독과 덕후, 무속인과 신애기, 건축가와 제자, 젊은 밴드의 우정과 배신. 겉으로는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진짜’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성해나는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현실을 기록한다. 인물의 말투, 손끝의 떨림, 공기의 온도까지 세밀하게 잡아낸다. 그래서 독자는 인물의 내면보다 먼저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의 냄새를 맡는다. 그 현실감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사실의 밀도에서 온다.


표제작 '혼모노'에서 신령이 떠난 무당 문수는 정체성의 붕괴를 맞는다. 신이 떠나도 신을 연기해야 하는 여인. 그녀는 가짜 신을 흉내 내는 ‘진짜 무당’으로 남는다. 작가는 그 냉혹한 역설을 치밀하게 조립한다.


'혼모노' 의 질문은 다른 단편으로 이어진다.
완벽한 팬이 되려다 자신을 잃는 덕후, 아이의 미래를 설계하려는 부모, ‘완벽한 취조실’을 설계하려는 건축가. 그들은 모두 ‘진짜’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짜를 향한 집착은 결국 자기파괴로 귀결된다.


작가는 냉정하다. 그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조차 불분명한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듯, 그는 다만 관찰한다.
성해나의 문장은 차갑게 벼려진 금속 같다.불필요한 수식은 없다. 대신 정확한 묘사가 있다. 그 묘사는 때로 잔혹하고, 때로 섬뜩하다. 현실을 해체하듯 눈앞에 펼쳐 놓는다.


그 세밀한 묘사가 작품의 윤곽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진짜’가 ‘가짜’로 바뀌는 순간, ‘인간’이 ‘흉내’로 변하는 찰나 — 그 전환점을 포착하는 솜씨는 탁월하다.
우리는 모두 진짜인 척 살아가지만, 어쩌면 이미 가짜일지도 모른다.

진짜이고 싶었던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은 소설 바깥에서도 반복된다. 사회 지도층의 학력 위조, 허위 경력, 조작된 이력서는 진짜 이고 싶은 인간 욕망의 절정이다. 


성해나는 묻는다. “그 욕망의 끝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출간 후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넷플릭스보다 재밌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체험에 가까운 평가다.
일부 평론가는 냉정함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리얼리즘이 압권이라고 평가했다. 이 작품을 “한국문학의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호명하기도 했다. 


읽고 나면 남는 건 감상이 아니라 감각이다. 책을 덮고 오디오북을 들으면 문장이 소리로 변해 고막을 파고든다. 벼려진 칼날이 귓속을 스친다.
그때 묻는다. “이것은 혼모노(진품)일까, 아니면 니세모노(가짜)일까?”


성해나의 '혼모노'는 현실의 피와 살로 빚어진 문학이다. 작가는 상상을 멈추지 않지만, 그 상상은 언제나 구체적 현실의 냄새를 동반한다. 그 냉정함이 이 책의 미덕이자,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다. 진짜를 욕망한 인간들. 그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초상이다.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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