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흰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선수단이 태극기와 각 시도기를 앞세우고 트랙을 행진하는 모습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체육회와 함께 마련한 ‘체육단체 혁신 방안’이 대통령으로부터 “엄청나게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본격 가동된다.
이번 방안의 골자는 권한이 소수에 집중돼 온 기존의 간선 구조를 선수·현장 중심의 직선제로 전환하고, 회장 임기를 1회 연임까지만 허용하는 방식으로 권력의 순환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징계 절차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스포츠 공정위원회 구성에 외부 추천을 의무화하고, 임원 비위는 상위기관이 처리하도록 해 ‘셀프 솜방망이’ 관행을 봉쇄한다. 예산 사업은 국고뿐 아니라 후원금 등 자체 재원도 문체부 승인을 받게 해 집행 책임을 강화하고, 기금사업 성과평가와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예산·인센티브에 연동한다.
안전 측면에서는 전담 조직을 신설해 사각지대를 줄이고, 학교체육 등 폐쇄적 공간에서 빈발해온 폭력 문제에 대해 익명신고 보장과 광범위한 수사·점검을 병행하는 ‘약자 보호’ 접근을 전면에 세웠다. 대통령은 보고 자리에서 “직선제 전환과 연임 제한이 공정성 회복의 핵심”이라며도, 4년+4년 후 ‘쉬었다가’ 다시 8년까지 가능한 이론적 허점을 지적하고 총임기 상한 설정을 제안했다.
이에 문체부는 직선제 환경에선 광범한 지지 없이는 재선·복귀가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집행권력의 장기화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고려해 보완 검토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대통령은 또 “징계가 지연되면 정의가 실종된다”며 양궁 선수 사례를 거론, 이의신청을 포함해 전체 절차 시간을 단축하는 ‘신속 징계’ 원칙을 주문했다.
문체부는 스포츠 공정위원회 추천권을 대한변호사협회 등 6개 외부기관으로 분산하고, 임원 비위는 상급 단위가 맡도록 의무화해 이해충돌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예산 투명성 강화도 눈에 띈다. 매년 약 4천억 원 수준의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국고사업은 물론 회원단체 배분과 자체 재원까지 한층 엄정한 사전승인·사후정산 체계를 적용하고, 성과와 책임을 예산편성·보상에 직결시킨다.
과거 일부 단체에서 제기돼온 회계 불투명·전용 의혹을 제도 설계 단계에서 불가능에 가깝게 만드는 장치들이다. 무엇보다 스포츠 폭력 근절에 대한 접근이 달라졌다. 대통령은 “신고자가 드러나면 2차 피해를 우려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특정 사건만 좁게 조사하다 신고자가 특정되는 폐해를 지적했다.
이에 따라 문체부는 익명신고를 전제로 포괄 조사와 일반 점검을 병행해 ‘누가 신고했는지 드러나지 않도록’ 조사기법을 개선하고, 분리된 윤리센터(70~80명 규모)를 축으로 교육부·여가부와의 협업을 강화한다. 특히 비리나 폭력으로 퇴출된 지도자가 종목 내 인맥을 타고 다른 지역·하위 단체로 재취업하는 ‘회전문’ 문제에 대해, 자격 자체를 박탈해 종목 생태계 전반에서 지도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퇴출을 제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선거제도 개편은 대한체육회부터 시작해 시·도체육회와 각 종목단체로 확산한다. 직선제 도입과 온라인 투표 허용으로 투표권자의 저변을 넓혀, 기존 간선제에서 33만 명 중 약 2천 명만 표를 행사하던 왜곡을 시정한다.
이는 선수·지도자·현장 간부 등 실제 활동 주체의 의사가 대표성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로, ‘선수의 권한 없는 스포츠 민주주의’라는 오랜 모순을 해소할 기반이 될 전망이다. 안전·위기관리 체계도 업그레이드된다. 사격장 실탄 유출 같은 사건으로 드러난 취약점을 계기로 안전 시책 총괄 조직을 신설해, 시설·장비·인력·교육을 아우르는 통합 관리와 선제 점검을 정례화한다.
예산·조직·징계·선거·안전이 한 묶음으로 재설계되는 이번 방안의 관통선은 ‘책임의 가시화’다. 누가 결정하고, 그 결정의 결과를 누가 평가하며, 잘못이 발생했을 때 누가 어떤 절차로 책임을 지는지의 경로를 명확히 해, 과거처럼 권력은 행사하되 책임은 흐려지는 회색지대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내년 안에 대한체육회 차원의 제도 정비를 마치고, 후년에는 산하 회원단체까지 확산해 공정성과 책임성이 작동하는 생태계를 완성한다는 일정표를 제시했다.
이번 개편은 IOC·IF 체계 안에서 정부의 직접 통제가 제한적인 현실을 감안해, ‘자율을 보장하되 공정이 작동하는 설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외부 추천을 통한 공정위 독립성, 상위기관 징계 의무화, 총임기 상한 검토, 신속 징계, 예산 전 주기 관리, 안전 총괄 조직, 익명신고-포괄조사-근원적 퇴출의 삼각편대가 함께 움직일 때만 실질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과제도 남는다. 직선제가 감정선거로 흐르지 않도록 공정한 선거관리와 후보자 검증을 제도화해야 하며, 온라인 투표의 보안·접근성·소외계층 배려도 치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예산 성과평가가 단체의 특성과 종목별 생애주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평가를 위한 사업’이 양산될 수 있다. 폭력 근절은 더더욱 성과를 조급히 재단하기 어렵다. 신고 활성화→조사 강화→처벌 일관성→재발 방지 교육→문화 변혁으로 이어지는 장기 연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방안이 가진 구조적 힘은 분명하다. 권한 배분의 재설계, 외부성의 도입, 책임의 자동화, 안전의 상시화라는 4개의 기둥이 서로를 보강하는 시스템이다. 대통령의 주문대로 총임기 상한과 신속 징계 트랙까지 더해진다면, 체육계가 그간 반복해온 권력의 사유화·예산의 불투명·폭력의 은폐라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실질적 계기가 될 것이다.
혁신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와 집행, 그리고 피드백의 연쇄다. 대한체육회가 앞장서고 시·도·종목단체가 뒤따르며, 선수와 시민이 감시자이자 주체로 참여할 때, 이번 개편은 ‘보고용 과제’가 아니라 스포츠 민주주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제 공은 제도 설계에서 운영으로 넘어갔다. 예외 없이 적용하고, 흔들림 없이 집행하는 것, 그것이 진짜 혁신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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