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백연식 기자] 면역항암 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전의 항암 후보물질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생명과학과 김용철 교수와 의생명공학과 박한수 교수 연구팀이 암세포의 면역 회피 기전에 관여하는 효소 ‘TPST2’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저분자 화합물 ‘77c’를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면역항암제는 인체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치료법으로, 기존 항암 화학요법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생존율 향상 효과가 커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일부 암종에서는 치료 반응률이 15~40% 수준에 그쳐, 여전히 상당수 환자에게는 효과가 제한적인 한계가 있다.
이는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회피하거나 억제하는 다양한 기전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때문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면역 감작제’ 개발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면역 감작제는 암세포의 면역 회피를 차단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인식·공격하도록 돕는 약물로, 기존 면역항암제의 반응률을 높이는 새로운 치료 전략이다.
연구팀은 TPST2 효소가 암세포의 면역 회피에 관여한다는 점에 착안해, 이 효소의 활성을 억제함으로써 종양에 대한 T세포 면역 반응을 크게 향상시키는 저분자 화합물 ‘77c’를 개발했다.
한국화합물은행(KCB)이 보유한 방대한 화합물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수많은 후보물질 중에서 TPST2 효소 활성을 억제할 수 있는 물질을 선별·검증(스크리닝)하고 약물 구조를 최적화하는 연구를 통해 TPST2를 표적으로 하는 최종 후보물질 77c를 도출했다.
실험 결과, 77c는 TPST2 효소 활성을 효과적으로 억제했으며, 마우스 대장암 세포(MC38)를 이용한 세포 실험에서 77c를 처리 시 TPST2 활성이 감소하면서 인터페론 감마(IFN-γ) 신호가 강화되고, 면역 신호전달 단백질 Cxcl10의 발현을 증가시켰다. 이로써 암세포가 면역세포에 더 잘 노출되고 공격받기 쉬운 ‘면역 활성화 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후보물질 77c는 사람의 대장암 세포를 이식한 실험용 생쥐 종양 모델(마우스 대장암 세포 이식 종양 모델)에서도 탁월한 항암 효과를 보였다.
단독 투여만으로도 종양의 성장 속도를 54% 억제했으며, 체중 감소 등 부작용 징후는 관찰되지 않았다. 특히 임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면역항암제(anti-PD-1 항체)와 함께 투여했을 때는 종양 성장 억제율이 약 80%까지 높아져, 두 약물 간의 뚜렷한 상승 효과가 확인됐다.
또한 77c를 투여하자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CD8+ T세포 등 면역세포가 종양 조직 내부로 더 많이 침투했고, 암을 기억해 다시 공격할 수 있는 CD8+ T세포와 NK 세포 등 항암 면역 반응을 담당하는 세포들의 활성이 전신 면역계에서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77c가 면역세포의 ‘공격력’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려 암세포를 더 효과적으로 제거하도록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세포 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분자 수준에서 확인하기 위해 단백질 구조 분석과 분자동역학(MD)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77c가 TPST2 효소의 핵심 결합 부위에 안정적으로 결합하여 효소의 작용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77c가 실제로 TPST2를 직접 억제한다는 분자적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실험에서 관찰된 면역활성 효과를 뒷받침하는 결과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김용철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TPST2가 약물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면역항암 치료 표적임을 처음으로 밝혀냈다”며 “TPST2를 억제함으로써 기존 면역항암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치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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