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리 집중력은 금붕어보다 못하다는 결과가 나온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인간의 집중력 8초, 금붕어의 집중시간이 9초이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입니다. <8초 집중력>의 시초는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약 2,000명의 뇌파를 측정한 결과, 인간의 집중력 지속시간이 8초라고 발표했습니다.이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정보의 폭증과 산만함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지요.
8초의 집중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거대 테크기업인 구글이나 메타는 짧아진 인간의 집중시간에 맞게 짧은 영상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숏츠나 릴스는 10초 이하입니다.
8초라면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서로 대화를 할 때,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을 잃어버린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할까요? 인간 세상은 소통하기 더 어려운 공간이 되고, 모든 게 스쳐 지나가는 것 밖에 남지 않겠지요.
가정을 한번 볼까요? 스마트폰이 만든 몇초의 세상. 거실이나 여행을 가서도,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가족들. 각자 손에 쥔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몸만 함께 있을 뿐, 생각은 딴 세상에 가 있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무신경해지면서 서서히 가족간의 관계는 끊어지고 있습니다. 국정감사 또한 제대로 된 정책질의 대신에 강성지지층에 보여주기 위해 개인 홍보를 노리는 '쇼츠 무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짧은 영상 속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구조 탓에 자극적인 언행을 쏟아낼 수 밖에 없겠지요.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언행이 이어졌고, 막말과 삿대질 속에서 회의는 파행을 거듭하지만, 이 장면들은 쇼츠로 재탄생해 유튜브와 SNS를 타고 훨훨 날아다닙니다. 카메라 앞의 조롱과 비난의 10초가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정책과 비전의 언어보다 더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화면에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쓰는 10초 이내의 현실이 마음 한켠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그런데 중앙일보에서 10명의 숏폼 크리에이터를 인터뷰한 결과는 더 놀랍습니다. 크리에이터 성공법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첫 3초였습니다.
"스크롤에 웃고 우는 숏폼 세계에선, 이 3초 동안 콘텐트의 운명이 갈린다는 뜻. 현재 업로드 가능한 가장 짧은 숏폼 영상 길이는 3초(틱톡)이기도 하다." (2025년 5월 12일)
3초 쇼츠로 유입된 시청자가 롱폼(긴 분량의 동영상)까지 소비, 구독자가 되는 ‘숏폼→롱폼→구독’구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3초 쇼츠는 미끼입니다. 인간은 3초안에 문제제기와 공감을 끌어내는 '후킹'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3초라? 문득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3초론’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생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쥐는 본능적으로 고양이를 피해 도망가다가 3초만 지나면 자신이 왜 도망치는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내가 왜 도망치고 있지?' 3초 안에 쥐구멍을 찾으면 사는 것이고, 3초 안에 못 찾으면 고양이에 잡혀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지요.
둘째는 바쁜 식당에서 (돈 안 되는) 반찬을 추가로 요청할 때 종업원이 3초 내 주방에 요청하면 오는 것이고, 3초가 지나 버리면 돈 되는 주문에 밀려 잊혀진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골프에 얽힌 이야기인데요, 연습 스윙 때는 '고개를 들지 말아야지' 하며 헤드업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운동화에다 '고들개'라고 써놓고 다짐합니다. 고들개는 '고개 들면 x새끼'라는 속어입니다.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막상 골프채를 휘두를 때는 3초안에 잊어버리고 헤드업을 합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헤드업을 안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 하는 것은 자신이 친 공을 보고 싶은 본능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히말라야에 산다는 ‘내일이면 집 지으리’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의 새가 떠올랐습니다. 제 집 없이 살아가는 이 새는 매일 밤마다 눈보라와 찬바람에 떨면서 다짐합니다.
‘내일이면 집을 지을 것이다. 날이 새면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리라.’
그러다 날이 새어 따사로운 햇살이 퍼지면, 이 새는 춥고 고통스러웠던 어젯밤을 까맣게 잊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자연에 매혹되어 정신없이 놀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다시 어둠이 내리면 추위는 어김 없이 찾아오고, 칼날처럼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에 새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 내일이면 반드시 집을 지으리라’고 또다시 절규합니다. 뼈 속 깊이 파고드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오돌오돌 떨며 한밤을 지내는 일은 가혹한 형벌이 아닐 수 없는데도 다음 날이면 그 고통을 까맣게 잊을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 새와 다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람들 역시 '내일부터 해야지' 라는 말을 평생 반복하다가 인생을 끝냅니다.
인지심리학이 밝힌 심리적 현재는 3초 정도의 순간으로 봅니다. 뇌과학은 현재의 자아를 다른 속도의 오감을 통합하는 “2초짜리 출입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현실을 직시해 보면, 우리의 마음은 현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언제나 과거를 향하고 있다. 우리의 주의력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현재의 자아는 그저 과거의 자아와 미래의 자아 사이에 존재하는 2초짜리 출입구일 뿐이다.'(나라는 착각, 그레고리 번스)
그렇다면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어느 쪽이든 시간적으로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마음 먹기와 실천하기 역시 딱 ‘3초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굳게 마음 먹은 일이라도 그 마음은 그리 굳은 상태는 아닙니다. ‘뭘 그리 빡빡하게 사나’, ‘한번 실패는 병가지 상사지’, ’적당히 좀 살게나‘ 하는 말은 다정하고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 둘 미루다 보면 어느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 단 한 번의 미룸이 인생을 좌우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인생을 근사하게 만들어 줄 일생일대의 승부를 꿈꿉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일생일대의 승부가 언제쯤 시작되는지, 어떤 방식의 승부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계륵이 되기 전에 멋진 기회 한번 찾아올까요. 그 멋진 기회는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렇다면 매일매일의 작은 승부가 생애를 결정짓는 승부가 아닐까요?
돌아보면 참으로 결정적이었던 선택, 그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마음이나 수첩에 적어 두었던 다짐의 말들을 꺼내어 봅시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다짐들이 거기 가득할 것입니다. 이제, 3초의 기적을 만들 차례입니다. 그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1초, 2초, 3초…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