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과 들기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 먹을까 고민될 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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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과 들기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 먹을까 고민될 때 보세요

코스모폴리탄 2025-11-13 00:00:00 신고

가을 오면 가을빛, 틀림이 없으니 해 기울어 5시쯤 부엌에 앉아 여기저기 스민 빛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빛은 움직인다. 멈추어 있는 법이 없다. 그리고 점점 투명해진다. 푸른 접시를 비추던 빛은 맑아지고, 식탁 모서리를 비추던 빛은 증발할 것처럼 희다. 마침 식탁 위에 유리병 2개를 나란히 두었다. 하나는 참기름, 하나는 들기름. 둘 다 투명한 호박색을 띠고 있지만, 쌍둥이처럼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낸다. 참기름이 좀 더 짙고 농밀한가 하면, 들기름은 개운하고 연한 빛에 들어 있다. 둘은 비슷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니까. 둘은 다르다. 우리의 고향이 각각 멀듯이. 그런 채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보편타당한 질문을 떠올린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일단 두 병을 어두운 곳으로 옮기고 시작하자.


늘 함께 불리는 두 이름이라지만, 참기름과 들기름은 엄연히 다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지 않는다. 미역국을 끓일 때 들기름을 찾는 경우와 계란프라이를 참기름에 부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참깨와 들깨가 다르다. 참깨는 참깻과에 속하고 들깨는 꿀풀과에 속한다. 식물학적 분류가 다르다는 것은 그 뿌리가 다르다는 뜻이다. 줄기와 잎이 다르고, 열매가 다르다는 뜻이다. 참깨는 열대에서 왔다. 아프리카가 원산지라 했던가. 더위를 즐기며 길게 자란다. 줄기는 각이 졌고, 잎은 길쭉한 채 마주난다. 여름에 분홍빛이 도는 흰색 꽃이 피고, 꽃이 지면 길다란 기둥으로 주머니처럼 생긴 방이 층층이 맺힌다. 그 속에 참깨가 들어 있다. 참깨 한 알은 동그랗지 않고 갸름하다.


들깨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산과 들에서 자생했다. 참깨보다 추위를 잘 견디는 성질이라 수확도 참깨보다 두어 달 늦다. 잎이 하트 모양으로 둥글납작하면서 끝이 톱니처럼 돼 있다. 잎에서 특유의 향이 짙게 난다. 참깨의 잎은 잘 먹지 않지만, 들깨의 잎은 자주 식탁에 오른다. 바로 우리의 깻잎이다. 가을에 작은 꽃들이 이삭처럼 피고, 거뭇하게 씨앗이 영근다. 들깨가 익을 무렵은 가을의 바스락거리는 햇볕이 한창일 때다. 더없이 푸른 하늘로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유난히 들깨 냄새와 어우러진다. 그리고 들깨는 참깨보다 동그랗고 알맹이가 조금 크다.


참깨를 심는 시기는 대체로 5월이나 6월이다. 참깨는 물을 싫어한다. 흙이 질면 물이 고여 뿌리부터 썩는다. 배수가 잘되는 땅이라야 하는데, 강변처럼 모래를 함유한 토양이 제격이다. 참깨는 길고 곧게 자란다. 그래선지 병충해에 약한 모습이다. 충청도 논산에서 농약 없이 참깨를 키우는 어머니는 여름에 손으로 벌레를 잡는 일이 참깨 농사의 가장 곤욕스러운 작업이라고 말씀하신다. 참깨는 추석 전에 거둔다. 갈색으로 익으면 깻대를 길게 벤다. 베어서는 단으로 묶어 세워서 말리고, 충분히 마르면 털어서 참깨를 얻는다.


들깨는 7월에 심는다. 참깨보다 늦다. 들깨도 물 빠짐이 좋은 땅이라야 하지만 참깨보다는 습기를 견딘다. 들깨는 덩치를 부풀리며 자란다. 참깨보다 튼튼하고 병충해도 덜하다. 그런데 빛에 민감하다. 같은 밭이라고 해도 행여 밤에 빛이 드는(가로등이 있다든가 해서) 곳에서는 열매를 잘 맺지 않는다. 들깨는 잎이 노랗게 물드는(이를 단풍깻잎이라 해서 특별히 친다) 10월부터 거둔다. 이삭이 거뭇하게 변하고 씨가 단단해지면 길게 벤다. 베어서 말리고 두드려 참깨처럼 털어낸다.


자, 이제 기름을 짤 차례. 방앗간 주변이 온통 고소한 냄새로 울려 퍼지는 시점이다. 우선 참깨를 볶아야 한다. 처음에는 센 불로, 참깨가 타닥 소리를 내며 튀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볶는다. 참깨가 황갈색으로 변하고 고소한 냄새가 진하게 올라오면 불을 끈다. 이제 볶은 참깨를 식힌다. 식히지 않고 바로 짜면 기름이 산패하기 쉽다. 참깨를 착유기에 넣고 압력을 가하면 기름이 흘러나온다. 첫 번째 압착에서 나오는 기름을 ‘초생유’라고 해서 특별한 가치를 매긴다. 색이 맑고 향이 깨끗하다.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깻묵이라 하는데, 그걸 두세 번 더 짠다. 처음보다 두 번째 짰을 때 훨씬 많은 양의 기름을 얻는다. 세 번째는 처음의 절반쯤. 그렇게 나온 기름을 모두 합치는 것이 일반적인 참기름이다. 한 번 짠 초생유와는 맛과 향의 차이가 크다. 짤수록 색은 점점 짙어지고, 침전물도 제법 쌓인다. 맛도 향도 세지고 탁해지는데, 미각의 취향과 기억에 따라 그걸 ‘진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름을 짜는 과정은 들기름도 비슷하다. 하지만 들깨는 참깨보다 덜 볶는다. 들기름의 향은 볶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들깨 자체의 성질에서 온다. 들깨는 가볍게 볶는다. 130℃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 볶으면 들기름 특유의 신선한 향이 날아간다. 들깨는 참깨보다 기름이 적게 나오지만, 한 알의 크기가 커서 기름의 양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들기름을 조르르 흘려보면 좀 더 묽고 가벼운 점성이다. 색도 옅다. 투명한 금빛이 돈다. 그런데 들기름은 공기와 빛에 약하다. 한번 뚜껑을 연 들기름은 참기름과 달리 냉장고에 보관한다.


오늘 저녁은 냉장고에서 들기름과 호박을 꺼냈다. 호박을 지퍼백에 넣고 절구로 두드렸다. 칼로 썰기보다 으깨고 뭉개지고 터지고 부서지도록 하는 이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순전히 기억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요리하셨다. 마늘을 빻거나, 가지를 찢거나, 풋고추를 뽀개거나, 대파를 부러뜨리거나, 어머니는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시기보다 그것들을 다른 힘으로 정리하셨다. 말하자면 “대충 그냥 이렇게 하는 게 더 맛있어”라는 어머니 말씀에, 그 기억에 나는 사로잡혀 있다. 이제 으깬 호박을 냄비에 넣고, 들기름을 훌훌 둘러 볶는다. 호박에 김이 오르고 좀 익어간다 싶으면 물을 자박하게 붓고 새우젓을 넣어 약한 불로 오래 끓인다. 호박이 거의 흐물흐물해져 숟가락으로 푹 떠질 때까지. 고춧가루나 풋고추나 마늘을 조금 더하는 건 나중의 일. 그리고 맨 마지막에 볶은 참깨를 절구에 찧어 찌개의 표면을 온통 덮어버리고 불을 끈다. 이것이 엄마로부터 내게 전수된 호박찌개다.


이번엔 참기름을 쓸 차례. 나는 김을 꺼냈다. 만만한 게 김이라지만, 김처럼 간결하고 풍성한 맛을 내는 식재료도 드물다. 김을 불에 그을렸다. 검은 김이 투명하고 노랗게 익는다. 그 냄새. 너무 아는 냄새. 여기에 필요한 건 간장과 참기름을 일대일로 섞어 담은 종지 하나뿐. 호박찌개와 밥, 김과 참기름간장. 이것이 오늘 나의 저녁 밥상이다. 어머니는 뭐랑 뭐랑 저녁밥을 드셨을까.


참기름과 들기름은 한국 음식을 비상시키는 양 날개다. 참기름은 음식을 마무리한다. 들기름은 음식을 열어젖힌다. 참기름의 고소함은 공격적이다. 조금만 넣어도 존재를 드러낸다. 시금치나물에 참기름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완전히 달라진다. 참기름은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으면서 마침내 모든 시선을 끌어온다.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는 카메오인 척하지만 사실은 주연급이다. 김밥에 바르는 참기름을 보라. 김 한 장에 참기름을 바르고 밥을 펴는 순간, 그 김밥은 이미 맛있다. 속재료가 무엇이든 책임은 참기름이 진다. 반면 들기름은 섬세하다. 재료와 어우러진 들기름의 맛은 단박에 알아채기 어렵다. 처음 맛보는 사람은 이게 뭔가 싶어 한다. 고소하지 않다. 아니, 고소하긴 한데 참기름과는 결이 다르다. 들기름에는 어떤 청량감이 있다. 풀 냄새 같은 게 난다. 신기하게도 들기름을 맛보면 혀가 개운해진다. 참기름이 입안을 채운다면, 들기름은 입안을 헹군다.


참기름과 들기름을 섞어 쓰는 경우는 드물다. 두 기름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한다. 참기름을 써야 할 곳에 들기름을 쓰면 어색하다. 들기름을 써야 할 곳에 참기름을 쓰면 과하다. 음식마다 어울리는 기름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규칙은 깨지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들기름을 파스타에 넣는다. 올리브유 대신 들기름으로 면을 볶는다. 또 어떤 사람은 참기름을 디저트에 쓰기도 한다. 그 ‘어떤 사람’에 나도 포함된다. 나는 들기름에 배를 찍어 먹는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참기름을 (후추도 조금) 뿌려 먹는다. 심지어 둘을 구분하지 않으려 똑같은 병에 담아 스스로 헷갈리게 한 적도 있다.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다. 맛의 팽창, 미각의 확장, 기억의 증대 같은 생각을 해보지만 갑자기 뭐가 달라지진 않는다. 입맛은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종류가 아니다.


그러면 두 기름의 차이를 태도의 차이라고 말해볼까. 참기름은 당당하고 들기름은 겸손하다. 참기름은 주장하고 들기름은 배려한다. 참기름은 열정적이고 들기름은 차분하다. 어떤 음식에는 참기름의 당당함이 필요하고, 어떤 음식에는 들기름의 겸손함이 필요하다. 비빔밥처럼 모든 재료를 하나로 묶어야 할 땐 참기름이 낫다. 묵이나 나물을 무칠 때처럼 재료의 본질을 내보여야 할 땐 들기름이 낫다.


참기름은 오래간다. 참기름으로 무친 나물을 먹고 나면 한참 입안에 참기름 맛이 맴돈다. 들기름은 금방 사라진다. 뒷맛이 간결하다. 어떤 사람은 참기름의 지속력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들기름의 청량함을 좋아한다. 취향의 문제다. 나는 요즘 들기름을 더 자주 쓰고 있다. 왠지 참기름의 진한 고소함이 예전만큼 당기지 않는다. 대신 들기름의 맑은 향이 좋다. 들기름을 두른 감잣국을 먹으면 속이 편하다. 참기름으로 만든 비빔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 단순히 칼로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참기름은 감정적으로도 묵직하다. 반면 들기름은 가볍다.


결국 두 기름은 인생의 서로 다른 국면을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참기름은 축제이고 들기름은 일상이랄까. 참기름은 젊음이라면 들기름은 성숙이랄까. 참기름은 사랑이고 들기름은 우정이랄까.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둘 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엌에는 2가지 기름이 나란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음식이든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어떤 마음이든 요리할 수 있다. 그런 채 우리는 좀 더 깊은 맛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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