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홍민정 기자]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며 원화 가치가 연일 추락하고 있는 배경에는 국내 요인보다는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라는 대외 변수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뚜렷한 이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자금 흐름과 정책 변수에 취약한 구조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평가다.
우선 강달러 현상은 사상 최장인 41일째를 맞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가 조만간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미국 연방 상원은 10일(현지 시간)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화당과 합의한 임시 예산안을 찬성 60표, 반대 40표로 통과시켰다.
셧다운이 종료되면 소비 회복과 경기 심리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달러 매수 심리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실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11일 오후 기준 전 거래일보다 0.05% 오른 99.64를 기록했다.
엔화 약세도 원화 가치 하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겠다”면서도 “투자가 늘지 않으면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이 발언을 추가 경기 부양, 즉 ‘돈 풀기’ 시그널로 받아들였고, 그 여파로 엔화 약세가 심화됐다. 엔화의 프록시(대리) 통화로 여겨지는 원화도 이 흐름에 연동되며 약세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의 상관계수는 0.8로, 최근 1년 평균치(0.27)를 크게 웃돌았다.
이는 같은 기간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떨어질 때 원화도 비슷한 방향으로 강하게 움직이며 약세 흐름을 보였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신용 리스크 자체는 크지 않지만 △엔화 약세 등 대외 변수 △대규모 대미 투자 펀드 집행 불확실성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투자 확대 △수출기업들의 달러 매도 유입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연내 환율 상단이 1,490원선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우리 기업들이 약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과 관련한 불확실성 탓에 달러를 적극적으로 내다팔지 못하면서, 원화 강세 요인보다는 약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다카이치 총리의 아베노믹스 계승 기조 아래 엔·원 동조화 흐름이 재현될 조짐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ING도 보고서에서 “환율의 주된 변수로 작용하던 경상수지 흑자와 원화 가치 간 상관관계가 최근 크게 약해졌다”며 “이제는 순대외자산 흐름이 환율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순대외자산 증가는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최근 합의된 매년 2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역시 달러 수요를 늘려 환율이 1,400원대에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환율과 자산 시장 안정을 둘러싼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공개된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당시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한 배경은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 자극과 원·달러 환율 재상승에 따른 금융 불안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금통위원은 “지금 시점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할 우려가 크다”며 “정부의 추가 부동산 대책 효과와 수도권 주택시장 흐름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금리 동결에 찬성했고, 유일하게 인하를 주장한 신성환 위원은 “고강도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으로 당분간 주택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미 상당 기간 지연된 금리 인하 시기를 감안해 가급적 빠르게 금리를 내리고, 이후 물가·경기 등 변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며 추가 금리 경로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다.
다만 10월 금통위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미 투자 세부 내용이 타결된 데다, 건설투자가 반등할 가능성이 커진 점 등을 고려하면 향후 경기 대응 차원의 금리 인하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당시 한은 집행부는 금통위에 보고한 자료에서 “금리 인하 효과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확대, 반도체 공장 건설 재개 등을 감안할 때 3분기를 저점으로 건설투자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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