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K방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경쟁력인 ‘성능과 가격, 빠른 납기’만으로는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무기 구매 조건에 친환경, 투명한 공급망, 노동·인권 윤리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마디로 어떤 무기를 사느냐보다 누구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생산된 무기를 사느냐가 중요한 구매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2027년부터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을 국방 분야에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CSDDD는 기업이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 원자재 공급처까지 포함한 전체 공급망에 대해 인권·환경 리스크를 직접 점검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이다. EU 집행위원회가 군수·안보 분야도 지속가능성과 인권 책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면서 규제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방위산업에도 ESG가 본격 적용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삼일PwC 분석에 따르면 이처럼 ESG는 단순한 투자 트렌드를 넘어 방산업체의 글로벌 조달시장 진출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필수 요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과거 ESG 투자 확산 초기에는 방위산업이 투자 대상에서 배제됐지만, 러-우 전쟁 이후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와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으로 각국의 안보 부담이 증가해 금융계의 투자 관점도 변화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방산시장에서도 ESG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건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ESG 공시 의무화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강화하는 움직임이다. 미 정부는 연방조달규정(FAR)을 개정해 지속가능성 요건을 조달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등 주정부 차원의 ESG 의무공시가 시행되고 있다. K방산이 수출 호황기를 맞이한 가운데, ESG 경영이 미비한 국내 방산기업들은 글로벌 조달시장 진출 제한이나 각종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국내 방산기업들도 친환경 제품 개발과 공급망 구축, 동반성장 및 상생협력, 그리고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ESG 경영 리스크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특히 환경 측면에서 친환경 제품 설계와 개발, 태양열 등 대체에너지 활용 등을 주요 대응 수단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국내 방위산업을 대표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디펜스, 한화오션,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로템 등 주요 방산업체는 양호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ESG기준원(KCGS)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ESG 등급에서 현대로템이 A+,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디펜스·LIG넥스원·KAI 4개사는 A, 그리고 한화오션이 B+를 획득해 비교적 우수 및 양호한 지속가능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글로벌 방산시장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김상일 한국생산성본부 ESG센터장은 “CSDDD가 2027년부터 시행되면 유럽 기업들은 자사의 협력사뿐 아니라 해외 협력사까지 포함한 공급망 전반을 대상으로 실사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이에 따라 국내 방산기업도 유럽으로 수출하거나 유지보수(MRO)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실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특히 김 센터장은 CSDDD 시행에 대비해 국내 방산기업들이 우선으로 점검하고 준비해야 할 영역으로 환경·기후 변화 대응과 노동환경 및 인권, 안전·보건, 투명경영과 정보 보안 등을 꼽았다. 그는 “해외 방산기업들도 이러한 요소를 포함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와 공급망 실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면서 “국내 방산기업들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중소·중견기업 협력사들이 개별적으로 ESG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기 어렵다”며 “정부 차원에서 컨설팅 지원, 인증 체계 마련, 기준 설정 등을 통해 기업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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