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와 범위의 갈등, 제국의 근본적 모순
중국의 경제는 눈부신 속도로 성장했지만, 그 거대한 규모가 결국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이 되고 있다.
MIT 경영대학원 교수 야성 황(Yasheng Huang)은 저서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에서 “중국은 성장의 원인이 곧 쇠퇴의 이유가 되는 나라”라고 단언한다. 그가 제시한 핵심 분석틀은 ‘EAST’, 즉 Examination(과거 제도), Authoritarianism(권위주의), Stability(안정성), Technology(기술)로, 중국 독재 체제의 내적 작동 원리를 해부한다.
황 교수는 중국이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규모(scale)’를 키우기 위해 ‘범위(scope)’를 희생하는 방식을 반복해왔으며, 이것이 곧 중국의 구조적 한계라고 지적한다.
규모란 통일된 이념과 방대한 인구, 거대한 영토를 의미한다면, 범위는 다양성과 포용성, 사상의 자유를 뜻한다. 중국 공산당은 전자의 확장에 집착하면서 후자를 제거해왔고, 이로 인해 경제와 사회는 더 이상 창의적 활력을 낳지 못하게 되었다.
▲ 송나라시절의 과거 시험 사진
과거 제도의 유산: 인재 독점과 사상 획일화의 시작
중국의 독재적 DNA는 과거 제도(科擧制度)에서 비롯되었다. 진시황의 제국은 통일에는 성공했지만 유지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해 15년 만에 붕괴했다. 그러나 수나라가 도입한 과거 제도는 제국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
과거 제도는 황제가 뛰어난 인재를 시험으로 선발하여 직접 등용함으로써 귀족 세력을 제어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는 장치였다. 시험과목이 성리학으로 통일되면서, 교육의 표준화가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사상의 획일화가 고착되었다.
모든 인재가 동일한 경전과 문장을 외우는 구조 속에서 창의적 사고는 사라지고, ‘성리학의 인간’만이 관료 체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상공업이나 기술혁신의 길은 출세의 통로가 될 수 없었고, 사회는 ‘시험공화국’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중국은 안정된 행정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민혁명과 과학혁명의 동력이 될 중산층·지식인 계층의 형성을 원천 봉쇄했다.
독재가 만든 안정과 승계의 함정
황 교수는 과거 제도가 제공한 안정성의 근본 원인을 ‘충(忠)과 효(孝)’의 제도화에서 찾는다. 성리학은 신하에게 절대적 복종을, 백성에게는 체제 순응을 가르쳤다. 헨리 8세가 교황청에 반기를 들자 신하들이 격렬히 반대했던 영국과 달리, 명나라의 만력제는 후궁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지만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시험으로 결정되는 완전경쟁 구조 속에서, 관료들은 권력자에게 철저히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늘날 공산당의 인사 시스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덩샤오핑 시기에는 집단지도체제와 세대 교체의 규범이 형성되었지만, 시진핑은 이 구도를 무너뜨렸다.
장기집권 체제가 굳어지면서 ‘설록의 저주(iron law of authoritarian succession)’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권위주의는 통치의 안정에는 유리하지만, 권력 승계의 불안정을 내재한다.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다시 불안정한 순환 구조에 들어섰다는 것이 황 교수의 경고다.
▲ 중국 천안문 광장
기술 발전의 역설- 송나라의 멈춘 혁명
중국의 기술력은 송나라 시절 이미 서유럽을 능가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황 교수는 그 이유를 “과거 제도의 과학적 사고 억압”에서 찾는다. 유교적 성리학이 학문을 독점하면서 사회 전체가 암기와 모방에 익숙해졌고, 논증·회의·실험의 전통이 사라졌다.
학문은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이념의 도구’로 전락했다. 결국 중국은 기술의 발전은 이뤘으나 혁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범위—즉, 다양한 사상의 공존과 비판적 사고—를 잃었다. 시진핑 체제 역시 이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핀테크 규제를 비판했다가 숙청당한 사건은 ‘정치가 기술을 억누르는’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는 기술을 발전의 수단으로만 취급하며, 통제 가능한 영역 안에 두려 한다. 그 결과 중국의 첨단산업은 자율적 생태계를 잃고, 세계 시장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
시진핑 체제의 범위 축소와 한국의 시사점
덩샤오핑 이후의 개혁개방은 중국 사회에 ‘범위’를 확장시키는 시기였다. 사유재산, 시장경제, 민간기업의 자유가 허용되며, 사회 전반에 활력이 생겼다. 그러나 시진핑은 그 범위를 다시 닫았다.
그는 ‘안정’을 명분으로 언론과 기업, 학계를 통제하며, 당의 통치권을 국가 전 분야로 확대했다. 그 결과 중국은 다시 ‘EAST 체제’—과거 제도, 독재, 안정, 기술—로 회귀했다. 정치적 충성이 기술적 혁신보다 우선하고, 민간의 자율성은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황 교수는 “중국은 더 이상 성장의 나라가 아니라, 쇠퇴의 시스템으로 진입한 나라”라고 결론짓는다.
한국은 이 역사적 사례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과거 제도와 고시문화는 인재를 효율적으로 선발했지만, 그 자체가 목표가 되면 사회 전체가 ‘시험에 최적화된 인간’을 양산할 뿐이다.
한국이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범위를 넓히는 방향—즉, 다양성과 자율, 실패를 포용하는 생태계—로 나아가야 한다. 중국이 보여주는 ‘규모의 저주’는 바로 범위를 잃은 제국의 전형이다. 거대한 제도와 통일된 이념은 한때 나라를 일으켰지만, 결국 창의의 불씨를 꺼뜨렸다.
야성 황 교수가 제시한 ‘중국 필패 공식’은 단순한 정치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한 학문적 경고다.
권위주의는 규모를 키우지만, 범위를 잃은 제국은 결국 스스로 붕괴한다. 21세기 중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단순한 경제 예측서가 아니라, 권력과 인간, 그리고 자유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통찰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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