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캐나다의 균열을 상징하는 그림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캐나다와의 무역 협상 중단을 선언하며 “이제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표면적으로는 온타리오주가 공개한 ‘관세 반대 광고’에 고(故)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훨씬 깊은 경제적 앙금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가 캐나다를 ‘최우방국’이라 부르면서도 유독 가혹하게 대하는 이유는, 바로 USMCA 협상 당시 낭농업 분야에서 벌어진 ‘뒤통수 사건’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부터 “미국의 무역적자가 제조업을 무너뜨렸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내세워왔다. 그가 “최악의 협정”이라 부른 나프타(NAFTA)를 대체한 것이 바로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였다.
나프타 체결 이후 북미 무역 규모는 1993년 2,900억 달러에서 2016년 1조 1천억 달러로 폭증했지만, 미국 제조업 일자리 70만 개가 멕시코로 이전했다는 분석은 트럼프에게 정치적 무기가 되었다.
그는 “미국이 늘 손해 보고 있다”는 인식을 무역 전반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캐나다와의 협상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에 대한 복수전이었다.
USMCA 협상에서 가장 첨예하게 맞붙은 분야는 철강이나 목재가 아닌 낭농업이었다. 캐나다의 낭농 시장은 ‘공급관리제도(Supply Management System)’라는 독특한 보호 구조로 운영된다.
정부가 생산량을 할당하고 가격을 통제하며, 외국산 유제품에는 최대 300%의 관세를 부과한다. 트럼프는 이 제도를 “미국 농민의 목을 죄는 장벽”이라며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2017년 캐나다가 도입한 ‘클래스 7’ 제도는 트럼프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버터 수요 급증으로 남아돌던 탈지유와 단백질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이 제도는 초여가유(ultrafiltered milk)를 국제 시세보다 싸게 팔 수 있게 했다.
이로 인해 위스콘신 등 미국 낭농지대에서 캐나다로 수출되던 초여가유 시장이 거의 사라졌다.
트럼프는 USMCA 협상에서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결과적으로 클래스 6과 7이 폐지되고, 미국산 유제품이 캐나다 시장의 3.6%를 무관세로 점유할 수 있는 쿼터(TRQ)를 확보했다.
그러나 여기서 ‘뒤통수 사건’이 벌어진다. 캐나다 정부는 이 무관세 쿼터를 미국산 낭농 완제품(치즈·요거트 등)을 수입하는 유통업자에게가 아니라, 자국 낭농 생산업자에게 배분했다.
캐나다 생산업자들은 미국 완제품과 직접 경쟁을 꺼렸고, 대신 미국산 원재료만 일부 들여왔다. 겉보기엔 약속을 지킨 셈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이 얻은 이익은 기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트럼프가 “우리가 이긴 줄 알았는데, 사실은 졌다”고 느낄 만한 상황이었다.
경제적 문제는 곧 정치적 상처로 남았다. 특히 낭농 피해가 집중된 위스콘신은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데리 벨트(Dairy Belt)’였다.
그는 자신이 캐나다로부터 ‘속았다’는 감정을 지지층에게 각인시키며 정치적 결집을 유도했다. 여기에 최근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레이건 전 대통령의 관세 비판 영상을 광고에 삽입하자, 트럼프는 이를 “보수의 상징을 모독한 행위”로 받아들였다. 연방 대법원에서 자신의 철강 관세 정책이 심리 중인 상황에서, 캐나다의 이런 움직임은 정치적 자극이었다.
▲ 트럼프가 자신의 sns에 캐나다를 미국의 영토로 표시하는 도발을 했다.
트럼프의 측근인 제이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당시 협상 실무를 맡았던 인물로, 캐나다의 TRQ 배분 ‘꼼수’를 직접 경험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의 대캐나다 강경 노선이 내년(2026년 7월) 예정된 USMCA 조인트 리뷰를 앞둔 ‘기선 제압용 압박’이라고 분석한다. 이번 리뷰에서 미국은 낭농 쿼터 재조정과 비관세 장벽 완화를 재협상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북미의 무역 갈등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무역의 명분 뒤에는 각국의 정치적 계산과 산업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워하는 이유는 ‘배신’이 아니라 ‘계산’의 문제다. 협정문에는 미국이 이긴 듯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캐나다가 실리를 챙겼다.
그 괴리감이 트럼프의 분노를 키운 셈이다. 미국이 다시 세계 무역의 룰을 주도하려는 시도 속에서, 캐나다는 ‘우유 한 방울로 강대국을 자극한 나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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