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베'라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극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독도를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일본 땅이라고 주장했으며, 대만 유사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등 한국과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는 발언을 했다.
또한, 최근에는 한국의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아랍에미레이트(UAE) 두바이 에어쇼 참석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에 기착해 급유를 시도했으나 독도 인근에서 통상 훈련을 진행한 것을 문제 삼으며 급유를 거절하기도 했다.
다카이치 "독도는 역사적·국제법적 일본땅"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취임 전부터 불거졌던 다카이치 총리의 극우 성향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지난 1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당 의원이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에 참여할 정부 대표를 격상해 각료(장관)를 보낼지 묻자 다카이치 총리는 "정부 대표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어 '일한 정상회담에서 (영유권) 주장을 했는가'라는 추가 질문에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면서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하는 기본적인 입장에 입각해 대응해갈 것"이라고 답했다.
일본 시마네현은 지난 2005년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해 이듬해부터 매년 2월 22일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행사에 장관 참석을 일본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반발을 우려해 2013년부터 13년 연속 차관급인 정무관을 행사에 파견하고 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9월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다케시마의 날에 대신(장관)이 당당히 나가면 좋지 않은가. (한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다카이치 총리는 역사 인식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독도 문제 등에서 일본 내 극우와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1995년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담화에 대해서도 "멋대로 대표해서 사과하면 곤란하다"라고 말했으며, 2022년 극우단체 주관 심포지엄에서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겨냥해 "어정쩡하게 하니까 상대가 기어오르는 것"이라고도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2006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독도 문제에 관한 글도 올렸다.
당시 그는 일본 정부가 말로만 항의할 것이 아니라 독도에 시설물을 설치하고 현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日, 한국 공군 '블랙이글스' 급유 지원 거절…한일 관계 '삐그덕'
안규백 국방 "일본 다른 모습 실망스러워"
다카이치 총리의 극우 본색은 지난달 조짐을 보였다.
지난달 30일 한국 공군의 블랙이글스는 두바이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 기지에 기착해 급유를 시도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블랙이글스 특수훈련기 T-50B가 지난달 28일 독도 인근에서 통상 훈련을 진행한 점을 문제 삼으며 급유를 거부했다. 이로인해 블랙이글스의 두바이 에어쇼 참가는 좌절됐다.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 직전에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일본과 군사 협력까지는 아니지만 안보 협력 관계는 긴밀하게 유지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자고 의견 일치를 봤고 상호 왕래까지 하자는 얘기를 했다"면서 "그 이후에 (일본이)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난 5일에는 한국 군악대의 오는 13일 자위대 음악축제 참가를 취소하겠다고 일본 측에 통보했다. 한국군 군악대의 자위대 음악 축제 참가는 한일 국방장관이 지난 9월 회담에서 인적 교류 활성화 일환으로 추진하기로 했던 사안이다.
이에 더해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이달 중 함께 실시하기로 했던 공동 수색·구조훈련도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훈련은 과거 몇 차례 시행된 후 코로나19 때 중단됐다가 재개 예정이었다.
다카이치 "대만 유사시 집단 자위권 행사 가능"…日총리 첫 언급
다카이치 총리의 '레드라인' 침범은 중국을 향해서도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해상 봉쇄를 풀기 위해 미군이 오면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무력을 행사하는 사태도 가정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나 지역이 공격받아 일본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존립위기 사태라고 판단되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내부적으로 대만이 공격받을 경우 존립위기 사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해 왔지만 공식적으로는 중국을 의식해 이를 언급하지 않아왔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총리 재임 당시였던 지난해 2월 대만 유사시가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질문에 "정보를 종합해 판단해야 하므로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中총영사 "목 베겠다" "죽음의 길" 강력 반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전해지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지난 8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과 관련해 "멋대로 끼어든 그 더러운 목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어 9일에는 "'대만 유사시가 일본 유사시다'라는 것은 일본의 일부 머리가 나쁜 정치인들이 선택하려는 죽음의 길"이라도 썼다.
그러자 일본 정부도 중국 측에 강한 항의와 함께 게시물 삭제를 요청했고, 현재 해당 게시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거나 취소하지 않았다.
그는 10일 중의원에서 문제의 발언에 대해 정부의 기존 견해에 따른 것이라며 "특별히 철회·취소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답변했다. 정부 통일 견해로서 내놓을 생각은 없다"며 "이 자리에서 명언하는 것은 신중히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日 언론 "대만 개입 발언, 외교상 불씨 될 수 있어"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개입 발언에 대해서는 일본 언론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1일 다카이치 총리가 집단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전략적 모호성'을 관철하지 않았다면서 선을 넘은 발언은 상대에게 속셈을 보여 억지력을 저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구체적 예와 자위대 행동을 연결 짓는 논의를 국회에서 공공연히 하면 침략을 생각하는 상대에게 속내를 보인다"며 "답변에 속박돼 상황에 맞는 판단을 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 내에서 '속내를 보였다'는 위기감이 확산했다고 보도했다.
방위성 관계자는 "미국조차도 대만 유사시 대응에 대해 명확히 말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한다"며 "역대 총리처럼 애매하게 말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시원시원한 주장으로 보수층 등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발언은 외교상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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