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최근 세계 무기 시장이 플랫폼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인공지능(AI)이 무기체계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국방 AI 시장을 미국과 중국이 선점하면서 K방산의 수출경쟁력이 AI 역량 확보에 달렸다는 경각심이 국내 방산기업 전반에 확대되고 있다.
11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리서치 앤 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국방 AI 시장 규모는 143억달러(약 20조8000억원)로, 연평균 12.5% 성장해 오는 2030년까지 290억달러(약 42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국방 AI의 성장은 기술 발전과 새로운 안보 위협, 그리고 복잡해진 세계 정세가 맞물려서 나타난 현상이다. 머신 러닝·컴퓨터 비전·자율 항법 등이 크게 발전하면서 군에서 드론, 무인 차량, 실시간 데이터 분석이 훨씬 더 쉽고 효과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각종 분쟁과 사이버·전자기 위협이 더 정교해지면서 각국 군대는 ‘신속·정확한 판단’이 필수가 됐다. 이는 AI가 엄청난 양의 정보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정리해 지휘관에게 바로 전달해 주기 때문에 더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AI는 현대 군사력을 크게 강화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글로벌 국방 AI 시장은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시장분석기관인 프리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기준 글로벌 국방 AI 시장 점유율을 보면, 북미지역이 약 41%를 점유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미 국방부의 막대한 AI 투자와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력이 배경이다.
특히 미국은 합동 전(全)영역 지휘통제(JADC2) 체계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워 육·해·공·우주·사이버 등 모든 군사 영역의 센서와 무기, 작전 통제를 AI로 연결하며 정보 우위와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자 한다. 또한 AI 기반 군수·정비 체계를 폭넓게 도입해 실전에서 인명 피해를 줄이고, 자율 전투체계 확대와 사이버 위협 대응, 예측 분석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 방산업계와 AI 스타트업의 협업이 활발해지면서 첨단 정보·감시·정찰(ISR) 시스템과 기존 군사 플랫폼의 AI 업그레이드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군사용 AI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성장세를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북미에 이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약 29%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2위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이 국방 AI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은 방대한 센서 데이터와 영상정보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판단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는 ‘지능화전(智能化戰)’을 기치로 AI를 무인전력, 데이터 분석, 표적 탐지·식별 등 다양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방산기업들도 AI 기술을 무기체계와 운영 전반에 적용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체들은 자율무인체계와 데이터 분석, 실전 모의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적용을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 확보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래 전장을 선도할 설루션으로 항공기에 탑재돼 스스로 전장상황을 인식하고 분석해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카일럿(KAILOT)’으로 AI 분야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KAI 관계자는 “AI와 자율비행 기술은 향후 전장 환경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면서 “KAI는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23년부터 AI 파일럿인 카일럿 개발에 착수했고, 지난해 1025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본격적인 연구개발 단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특히 KAI는 지난해 상용 드론을 활용한 장애물 회피 실증을 완료한 데 이어 현재는 개발 중인 다목적 무인기(AAP) 축소기에 카일럿을 탑재해 실증 비행을 진행 중이다. KAI 관계자는 “향후 카일럿을 AAP와 무인전투기(UCAV)에 적용하고 KF-21과 같은 유인 전투기와 협업 임무수행(MUM-T)이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로템은 4차 산업 기술을 반영한 미래 무인체계 경쟁력 확보에 힘쓰고 있는 가운데 대표 제품인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HR-SHERPA)’를 필두로 한 무인체계 사업 육성을 통해 전차, 장갑차 등 기존 지상무기체계 제품군은 물론 미래 시장에 폭넓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HR-셰르파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무인화, 전동화 등 첨단 기술과 함께 내구성, 안전성은 물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차량 제조의 기반이 되는 주요 기술들이 담겨 지난 2020년 방위사업청의 다목적 무인차량 신속시범획득 사업을 단독으로 수주하기도 했다.
현대로템에 관계자는 "미래 무인체계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우리 군에 최적화된 다목적 무인차량을 만들기 위해 세대를 거듭하며 성능, 디자인 등 다방면으로 HR-셰르파를 진화시켜 왔다”며 “HR-셰르파를 비롯한 무인체계 핵심 기술력을 지속 강화해 사업 경쟁력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AI 영상분석 기술은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AI 플랫폼을 통해 초고해상도 위성 영상들은 준(準)실시간으로 분석되며, 이상징후 판별 시 즉각 지휘통제체계 및 야전부대에 해당 정보를 전송하게 된다”면서 “한화는 위성 제조 및 운용을 넘어 위성영상 서비스와 영상 분석 서비스 제공까지 우주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이전에는 판독관이 위성 영상을 직접 확인했지만, 이제는 AI가 데이터를 빠르고 정밀하게 분석해 더 높은 정확도를 확보하고 있다”며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AI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고품질 데이터로 AI 학습의 정밀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국내외 시장에서 기술 완성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면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AI 영상 분석을 개발하는 단계에 들어섰지만, 한화의 기술 수준은 이들보다 한층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국방 AI 기술 경쟁력은 AI를 적용한 재래식 무기체계의 고도화 수준에 달렸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군이 보유한 야전 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 개발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민간업체가 야전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는 특히 “중국의 국방 AI 기술이 위협적인 이유는 ‘군민 융합’ 전략을 앞세워 민간 AI 기술을 군에 빠르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군사 보안상 제약으로 실전 데이터 확보가 어려워 기존 무기체계를 고도화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군이 데이터 개방 범위를 단계적으로 늘리고, 국방 전용 클라우드 활용 등 실질적인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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