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기후정상회의는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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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기후정상회의는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BBC News 코리아 2025-11-11 13:21: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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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풍력 터빈, 도널드 트럼프 이미지
BBC

지금 보면 마치 옛 유물처럼 느껴지는 10년 전 파리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어두운 정장 차림의 남녀 수십 명이 'COP21 파리'라는 큼지막한 문구 앞에 줄지어 서 있다.

가운데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활짝 웃으며 서 있고, 바로 옆에는 미래의 찰스 3세 국왕이, 그 앞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자리한다.

사진 오른쪽 귀퉁이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보이는데, 그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프레임 밖에 있다. 이날 기념 촬영에는 참석한 정상들이 너무 많아 사진사가 한 장으로 모두 담아내기 어려웠을 정도였다.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중 세계 정상들의 단체 사진
AFP via Getty Images
10년 전 파리에서 열린 COP21에서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워낙 많이 참석하여 사진 한 장에 모두 담기 힘들 정도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역시 그해 COP에 참석했다

지난 6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정상회의 기념사진과는 차이가 실로 극명하다. 올해 사진에는 정상 단 30명만 찾아볼 수 있다.

시 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비롯해 약 160개국 지도자들이 불참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재가 눈에 띄었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회의 준비 전반에 걸쳐 발을 빼며 올해는 고위급 관료조차 파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이 있다. 이토록 많은 정상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왜 2주간에 걸쳐 다국적 회의를 열어야 할까.

COP21에서의 파리 협정 체결을 이끌어낸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지난해 회의에서 현재의 COP 과정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후 운동가 출신으로 현재 신생 싱크탱크 '룸'의 대표인 조스 가먼 또한 "다자간 외교의 황금기는 끝이 났다"며 이에 동의했다.

브라질 벨렘에서 열린 COP30에서 지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nadolu via Getty Images
올해 COP30 단체 사진에는 비교적 훨씬 적은 수의 세계 지도자들만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COP는 아마존 외곽의 습한 지역에서 열렸다

"이제 기후 정치는 누가 신에너지 산업의 경제적 이익을 선점 및 통제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로 COP 회의가 29차례나 열렸음에도 배출량은 여전히 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앞으로 COP 회의를 더 이어간다 한들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트럼프와 기후 '사기극'

올해 초 취임 첫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마커 펜을 들어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다시 탈퇴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2015년 체결된 UN 조약인 파리협정은 각국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C 이하, 가능하면 1.5°C 이하로 억제하고자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9월 열린 UN 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후변화'라는 것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최대 사기극"이라고 비난하며, "이 녹색 사기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나라는 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회하는 한편, 화석연료 기업들을 위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감세 법안에 서명했으며, 연방 소유의 토지를 화석연료 개발용으로 개방했다.

이에 더해 전 세계 정부를 향해 "한심한" 재생에너지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미국산 석유와 가스를 구매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심지어 몇몇 국가에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징벌적 관세 부과를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 한국, 유럽은 이미 미국산 탄화수소 수백억 달러어치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

목표는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세계 1위의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한편 전임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했던 청정에너지 정책은 하나씩 해체하고 있다.

COP30에서 악수하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윌리엄 왕자
WPA Pool/Getty Images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윌리엄 왕자 또한 COP30에 참석했다

우선 풍력 및 태양광 발전 보조금과 세제 혜택이 폐지되었으며, 관련 허가, 프로젝트도 취소되었다. 연구 자금 역시 삭감되었다.

지난 9월 만난 자리에서 현 행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은 "미국 내 풍력 발전은 33년간 보조금을 받아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라며 "25~30년간 보조금을 받았다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오바마,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고문을 지낸 존 포데스타는 "미국은 청정에너지(산업을)를 부수고자 철구를 휘두르고 있다"면서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저들은 우리를 20세기가 아니라 19세기로 되돌리려 합니다."

파리 협정 탈퇴를 선언하는 행정명령을 보여주는 트럼프 대통령
AFP via Getty Images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이 '기후변화'라는 것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최대 사기극"이라고 했다

지난달, 전 세계 해운 배출량을 감축시켰을 수도 있었던 기념비적인 협정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로 결국 협상이 결렬되며 무산되었다.

이에 많은 COP 지지자들은 미국의 이러한 행보에 결국 다른 나라들도 감축 약속 이행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 환경사회센터의 안나 아버그 연구원 또한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고려하면 COP는 "매우 어려운 정치적 환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COP가 전 세계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부, 기업, 기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탁구팀을 이기기엔 너무 늦은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전략으로 인해 미국은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장악하고자 노력해 온 중국과의 정면충돌 구도로 내몰리고 있다. 다만 중국은 청정에너지 기술을 통한 장악을 꿈꾼다.

기후 전문 웹사이트 '카본 브리프'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경제 성장률 중 약 40%를 청정 기술이 견인하였다. 지난해 소폭 둔화하긴 하였으나, 재생에너지는 신규 경제 성장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현재 중국 전체 경제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COP 참여를 넘어 자국의 에너지 모델 자체를 세계화하고자 나서고 있다.

중국 저장성 후저우시에서 펼쳐진 태양광 패널
NurPhoto via Getty Images
미국이 화석 연료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녹색 기술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불화는 글로벌 기후 논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세계 두 초강대국이 맞붙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과 유럽은 물론 인도,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브라질 같은 주요 신흥국들까지 그 사이에 끼게 되었다.

올해 회의에서 한 주요 선진국 정부 관계자는 "지금 (각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처럼 비치는 일"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이 자신이 말하는 과거의 실수 즉, 또 다른 핵심 산업을 중국에 잃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더 값싼 중국 경쟁사들에 유럽의 태양광 제조 기반이 넘어간 일에 대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경고이자 교훈"이라고 표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AFP via Getty Images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이 자신이 말하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재생에너지 및 기타 청정에너지원 시장이 향후 10년 내 6000억~2조유로(약 1007조~3358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중 최소 15%는 유럽의 몫이길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야망을 품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연구기관 '아시아정책연구소'의 '중국기후센터'의 리 슈오 소장은 "중국은 이미 세계 청정기술 분야의 초강대국"이라면서 태양광, 풍력, 전기차, 첨단 배터리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우위는 이제 "사실상 흔들림이 없다"고 표현했다.

이어 이를 중국 탁구 대표팀을 이기려는 시도에 비유하며 "중국을 능가하고 싶었다면 25년 전에 준비해야 했다. 이제 와서 하려 한다면 희망이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AFP via Getty Images
미국과 중국은 에너지 분야에서 매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패널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첨단 배터리 공급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전기차와 풍력 터빈 생산에서는 각각 70%, 약 60%를 차지하는데, 이 모든 것을 놀라울 정도로 낮은 가격에 공급한다.

최근 EU의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 시도는 이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시장을 개방하면 유럽 자동차 산업이 붕괴할 수 있고, 시장을 폐쇄하면 친환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가먼 대표는 중국 기업의 접근을 제한하면 배출량 감축 속도는 더뎌질 수 있으나, "경제 안보, 일자리, 국가 안보 등을 둘러싼 의문을 아예 무시한다면 기후 변화 대응 노력에 대한 대중과 정치권의 지지가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OP: 새로운 목적을 찾을 수 있을까, 혹은 무의미할까?

현재 글로벌 정치와 우선순위의 방향이 변화하는 가운데 아버그 연구원은 COP가 국가 및 기관들의 "책임을 묻는" 연례 포럼이 될 것이라면서, 이 또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브라질 COP30 개최 전,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이 파리에서 설정한 '1.5°C 목표'가 달성 불가능할 것이라고 인정하며, 이는 글로벌 공동체의 "치명적인 태만"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는 역사상 가장 더운 한 해였으며, 올해 6월 주요 기후전문가 60명은 현재 수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속될 경우 지구는 불과 3년 안에 1.5°C 문턱을 넘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연례 회의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의 창립자이자 녹색에너지 관련 팟캐스트 '클리닝 업'의 진행자인 마이클 리브리히는 "COP는 5년에 한 번씩 대규모로 개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는 COP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약속을 내놓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산업이 발전하고 실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실물 경제가 따라잡을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1850년 이후 전 세계 기온 상승을 보여주는 그래프
BBC
지난해는 지구 평균 기온이 1800년대 후반에 비해 1.5℃ 이상 높았던 최초의 해였다. 다만 12개월간의 기온 상승만으로는 파리 협정 위반으로 보지 않으며, 지난해의 기록적인 폭염은 자연적 기상 요인의 영향도 있었다

리브리히는 청정에너지 확산을 가로막는 장애물 제거에 초점을 맞춘 소규모 회의야말로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후 정책이나 계획을 실제로 실행하는 등의 일부 사안의 경우, 브라질 열대우림의 외곽이 아닌 미 월스트리트 등 "실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더 관련성이 높은 장소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올해 COP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사안들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예정이다. 그중에는 아마존, 콩고 분지 등의 전 세계 주요 열대우림을 지원하기 위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금 조성 합의도 포함된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의 기후 정책 고문 출신으로 현재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제이콥스는 집단적 지지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집단적 과정을 폄훼하려 들고 있기에 이는 정치적으로 큰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계속해서 기후 정책을 시행할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에도 탈탄소화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됩니다."

영국 웨일스 트레오키 풍력발전단지의 풍력 터빈들
Getty Images
EU 집행위원회는 재생에너지 및 기타 청정에너지원 시장이 향후 10년 이내에 2조유로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의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안보부 장관은 이러한 다국적 회의가 국가들의 기후 변화 대응 참여를 유도하고, 재생에너지 혁명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게 한다면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회의가 "딱딱하고, 복잡하고, 고통스럽고, 지치지만" 그래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이들이 이러한 국제 회의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결국 참석한 수많은 국가들이 직면한 현실적 선택지는 중국이 주도하는 청정에너지 혁명에 어느 정도 동참할지, 혹은 화석연료 우선 정책에 더욱 집중할 것인지로 좁혀진다.

이 때문에 올해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리고 향후 COP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하며, 많은 관측통은 탈탄소화 과정이 과거 COP의 다국적 약속 형태보다는 개별 국가 간 거액의 거래 형태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상단 사진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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