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평택항을 거점으로 수소 기반의 친환경 항만 구축에 나섰다. 단순한 수소차 보급을 넘어, 항만·물류·에너지 인프라 전반을 수소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통합 생태계 구축 모델'이 본격 가동되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11일 평택시청에서 평택시, 경기평택항만공사, 평택지방해양수산청 등과 함께 '탄소중립 수소항만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에는 켄 라미레즈 현대차그룹 에너지&수소사업본부장 부사장, 정장선 평택시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평택항을 중심으로 수소 연료전지(FC) 발전기 도입, 수소 생산 및 공급 인프라 구축, 수소 항만장비·트럭·충전소 도입, 그리고 수소·암모니아 벙커링 등 친환경 항만 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민관 협력 체계를 골자로 한다.
각 기관은 역할을 분담해 현대차그룹은 수소 사업 총괄, 기아·현대글로비스는 수소 어플리케이션 도입, 평택시는 배관망 구축, 해양수산청은 인허가 및 제도 지원, 항만공사는 규제 개선을 맡는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수소 생태계 전환의 새로운 무대를 '항만'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소산업이 승용차나 발전용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면, 이제 항만이라는 산업 인프라 공간이 본격적으로 수소 실증의 장이 되는 것이다.
항만은 선박·트럭·물류창고 등 다양한 운송 수단이 집적된 구조로, 수소 연료전지 발전·벙커링·트럭 전환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부터 평택항 인근에서 국내 최초의 '수소 카트랜스포터(차량 운반용 트럭)'를 시범 운영 중이며, 이번 협약을 통해 관련 생태계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켄 라미레즈 부사장은 "해양수산부의 '수소 항만', 국토교통부의 '수소 도시' 정책 목표를 함께 달성하는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라며 "평택항을 중심으로 국내 최초의 항만 내 친환경 전력 공급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협약은 정부 부처 간 수소 정책을 산업 현장에 접목한 첫 실질적 모델로 평가된다. 해양수산부의 '수소 항만' 구상과 국토부의 '수소 도시' 정책이 평택항을 매개로 결합하면서, 중앙정부-지자체-기업이 협력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소 생태계가 가시화되고 있다.
평택시는 이미 1기 수소도시로 선정돼 2023년부터 평택항 인근 수소 생산 단지에서 경기경제자유구역(포승지구)까지 15km 규모의 수소 배관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번 협약은 이러한 인프라를 항만 운영과 연계해, 지역 단위의 '탄소중립형 수소 클러스터'를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사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소 모빌리티를 넘어 '수소 에너지·물류·인프라' 전 영역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를 주도하기 위해서다.
그룹은 수소연료전지차(넥쏘)를 비롯해 수소 상용차, 수소 트럭, 수소 발전기, 수소 운송선 등 밸류체인 전 영역을 보유하고 있다. 평택항 프로젝트는 이러한 기술과 인프라를 통합해 수소경제의 실증 거점으로 발전시키는 시도다. 향후 항만 내 전력공급, 물류차량 전환, 벙커링 시스템이 구축되면 현대차그룹의 수소 관련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모델이 될 전망이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수소의 생산·공급 단가를 낮추고, 장비 및 운송 수단의 전환 비용을 최소화해야 실질적인 탄소중립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린 암모니아 기반의 수소 공급망이 언급됐지만, 여전히 경제성과 안전성 확보가 관건이다.
또한 항만 내 인허가, 배관망 구축, 벙커링 설비 등은 복합 규제 영역에 속해 추진 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항만 장비와 트럭의 수소화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관련 장비의 성능 검증과 유지 비용 안정화도 필요하다.
이번 협약은 수소 생태계가 '비전'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평택항이 수소항만으로 전환될 경우, 향후 부산항·인천항 등 타 항만으로의 확산도 가능하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이번 협약을 통해 수소 모빌리티 중심에서 벗어나 에너지, 물류, 산업 인프라를 아우르는 '수소 종합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평택시는 수소도시·수소항만 브랜드를 기반으로 국가 수소경제의 실질적 거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번 협약이 성공적으로 실행된다면, 한국의 수소 산업은 '도로 위 수소차'에서 '항만과 바다의 수소 생태계'로 무대를 넓히게 된다. 현대차그룹과 평택항의 시도는 탄소중립 사회를 향한 실질적 실험이자, 수소경제 시대를 여는 상징적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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