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헤르만 헤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인간 존재의 내적 갈등과 감정, 철학적 탐구를 무대와 음악으로 구현하는 작품이다. 원작의 철학적 메시지는 단순한 서사적 재현을 넘어, 배우들의 연기적 해석과 연출, 음악, 무대미학을 통해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변주된다.
작품은 세상과 단절된 마리아브론 수도원을 배경으로, 어린 소년 골드문트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수도원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곧 그는 젊은 수도사 나르치스와 운명적으로 마주하며, 두 영혼 사이에는 초기부터 미묘한 긴장이 형성된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리지만, 각자의 내적 세계에서는 방황과 갈등이 공존한다.
나르치스는 신과 규율 중심의 삶을 추구하며 정신과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내적 안정과 질서를 갖추고 있지만, 감정과 욕망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내적 고독과 긴장을 내포한다. 반대로 골드문트는 감정과 본능을 좇는 자유로운 예술가로, 삶의 순간순간을 도취와 경험으로 채운다. 이러한 대비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갈등, 즉 정신과 본능, 이성과 감정의 긴장 구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오는 12월 펼쳐질 뮤지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삼연에서 나르치스 역의 유승현은 차분하면서도 내면의 고독과 갈등을 섬세히 표현하며 캐릭터의 복합성을 극대화한다. 최호승과 안재영은 나르치스의 규율과 자기 성찰, 동시에 친구에 대한 연민을 다양한 톤으로 구현하여 같은 인물 내에서도 다층적 내면을 보여준다. 임별은 묵직한 연기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나르치스의 고뇌와 영적 긴장을 극대화한다.
골드문트 역의 강찬은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에너지를 중심으로 캐릭터를 구축하며 방랑자적 자유로움과 열정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동현은 감정적 폭발과 섬세한 내적 갈등을 동시에 구현하여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김서환과 박경호는 감정의 다층적 변화를 강조하여 관객이 캐릭터의 성장과 내적 여정을 함께 체험하도록 만든다.
극 초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첫 만남 장면은 두 인물의 본질적 대비를 시각적·음악적으로 강조한다. 조명은 나르치스의 안정감과 골드문트의 자유로운 에너지를 대비시키며, 음악은 긴장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선사한다.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시선 처리까지 조화롭게 맞물리면서 관객에게 즉각적인 몰입을 제공한다.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의 자유로운 삶을 이해하려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내적 긴장과 갈등이 음악적 선율과 조명을 통해 극대화된다. 유승현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장면 몰입도를 높이고, 임별은 내면적 폭발을 통해 캐릭터의 영적 긴장을 강조한다. 골드문트가 자신의 방황과 예술적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강찬의 자유로운 몸짓과 음성, 음악적 폭발력이 돋보이며, 동현은 감정의 세밀한 변화를 통해 내적 불안을 표현한다.
두 인물이 서로의 결핍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장면은 극적 교감의 정점으로, 음악과 연출, 배우들의 호흡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관객은 두 캐릭터의 내적 성장과 상호작용을 직관적으로 체감하며, 철학적 사유와 정서적 공명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연출가 윤상원은 철학적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보다 상징적 장면과 배우들의 내적 연기를 통해 관객이 스스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강약 조절과 상징적 장면 구성은 원작의 추상적 철학적 내용을 감정적·시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들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철학적 탐구 중심의 연출이 서사의 직관적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음악감독 유한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대비되는 내적 감정을 선율, 리듬, 화성적 대비로 구현한다. 서정적이면서도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음악적 표현은 관객이 두 인물의 내적 변화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다만 극적 전개와 음악적 강렬함 사이의 균형이 일부 장면에서는 미묘하게 어긋나며, 청각적 몰입을 위해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무대미학은 작품의 핵심적 요소다. 간결하면서 상징적인 세트와 소품은 수도원의 엄격함과 골드문트의 자유로운 감성을 시각화하며, 조명과 음향은 인물의 내적 변화를 강조한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 공간 활용의 극적 전환은 극 전체의 철학적 사유와 서사적 긴장을 강화한다. 일부 장면에서는 공간적 제약이 배우들의 동선을 제한하기도 한다.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캐릭터 대비와 내적 심리 탐구, 철학적 주제를 음악과 무대미학, 연출과 연계해 다층적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상호 작용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결핍, 성장 문제를 심도 있게 드러낸다.
두 인물의 내적 여정과 상호 보완적 관계는 관객이 삶과 인간 본성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장치를 제공한다. 생과 사, 정신과 본능,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선택과 갈등을 겪는 두 인물의 이야기는 철학적 탐구와 정서적 울림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궁극적으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철학적 사유와 감정적 몰입을 동시에 추구하는 뮤지컬이다. 배우들의 섬세한 내면 연기와 연출, 음악, 무대미학의 조화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관객은 단순한 극적 경험을 넘어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게 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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