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 오너일가가 형제 간 독립경영에 돌입한 이후 베트남 사업에서 엇갈린 성적을 내고 있다.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주도한 효성비나케미컬은 대규모 손실에 시달리며 그룹 재무 리스크의 중심으로 떠오른 반면 삼남 조현상 HS효성 부회장은 베트남 법인을 중심으로 안정적 수익을 내고 있다. 같은 베트남, 같은 효성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경영 결과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조현준 회장의 '베트남 승부수' 장기간 적자행진에 그룹 부실 전이 우려까지
조현준 회장은 2018년 베트남을 그룹의 핵심 생산기지로 삼겠다는 청사진을 내걸었다. 그는 13억달러(약 1조8000억원)를 투입해 효성비나케미컬을 설립하고, 에틸렌·프로필렌·폴리프로필렌 등 기초화학소재 생산 설비를 구축했다. 베트남 정부와의 협력으로 동남아 화학 허브를 조성하겠다는 포부였다. 그러나 사업이 본격화된 이후 효성비나케미컬의 재무 구조는 빠르게 악화됐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효성비나케미컬의 부채는 약 1조6500억원, 부채비율은 5600%에 달한다. 단기부채가 단기자산을 초과하고 누적적자가 심화돼 존속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실제로 효성비나케미컬은 2022년 35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이후 2023년 2936억원, 2024년 2507억원 등 매년 수천억원대 손실을 내고 있다.
효성화학은 이를 메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금을 수혈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315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835억원의 채무보증을 제공했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6일에도 578억원을 추가 대여하며 유동성 방어에 나선 상태다. PwC 감사보고서에서는 지난해 효성비나케미컬 투자자산에 손상징후가 발생해 885억원의 손상차손을 반영했다고 명시했다. 이는 투자금 회수가 쉽지 않다는 경고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적자가 단일 법인에 그치지 않고 그룹 전반의 재무 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별도기준 효성화학의 매출액은 6540억원, 반기순손실 1194억원이다. 매출은 5.3% 감소했고, 순손실은 230% 증가한 수치다. 부채비율은 260%에 달했고 단기차입금은 1조원이 넘는다. 영업활동 현금흐름 역시 1528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4352억원)의 3분이 1수준으로 급감했다. 외형뿐 아니라 내실마저 무너진 셈이다.
이처럼 효성비나케미컬의 부진이 장기화된 배경에는 글로벌 석유화학 시황의 침체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지목된다. 여기에 고금리와 환율 불안이 겹치며 가동률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베트남 사업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오히려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차원의 지속적 지원에도 실적 개선이 지연되고 있어 효성 전체의 신용도와 현금흐름에도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효성비나케미컬은 그룹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로 추진됐지만 수익성보다 상징성이 앞서 있다"며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자금을 투입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상 부회장의 HS효성, '실속형 베트남 전략' 한-베 협력창구 역할 톡톡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이 이끄는 HS효성은 같은 베트남 시장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HS효성 자회사인 HS효성첨단소재 베트남 법인은 지난해 매출 1조7241억원, 당기순이익 982억원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지 중이다.
HS효성의 베트남 사업은 2000년대 초반 시작됐다. 당시 베트남의 낮은 인건비와 우수한 항만 접근성에 주목한 HS효성은 2007년 베트남 법인을 설립하고 타이어코드 및 산업용 소재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이후 단계적으로 탄소섬유, 스판덱스, 산업소재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현지 생산 거점을 강화했다.
HS효성의 베트남 법인은 단순 제조거점을 넘어 글로벌 표준 공정을 담당하는 '마더 플랜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그룹 전체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현상 부회장이 직접 현지 정부와의 네트워크를 관리하면서 투자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 7월 조 부회장은 베트남 하이퐁에서 르엉 끄엉 국가주석을 직접 만나 APEC CEO 서밋 초청장을 전달하며 민간 외교 역할을 수행했다. 이재명 정부의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 과정에서 베트남 협력 창구 역할을 한 것도 조 부회장이었다. 그는 한·베트남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양국 간 경제·산업 협력을 주도하며 베트남 내 효성그룹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HS효성은 조현상 부회장의 리더십 아래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를 중심으로 베트남 광남(Quang Nam) 법인에 1870억원 규모의 타이어코드 증설 투자를 진행 중이며 2025년 완공 시 그룹 매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전망이다.
효성첨단소재 베트남 법인만 보더라도 지난해 매출 1조7241억원, 광남법인 매출 275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베트남에서 창출하고 있다. HS효성의 재무구조 역시 효성화학과 달리 안정적이다. 채무보증 규모는 크지만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올해 상반기 기준 762억원으로 지난해(355억원)의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HS효성의 베트남 사업이 효성그룹의 새로운 '재무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조현상 부회장은 베트남 내 생산 거점 확대와 함께 현지 정부 관계를 강화하며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있다"며 "조현준 회장의 공격적 투자가 누적된 손실로 인해 그룹 재무부담을 가중시킨 반면 조현상 부회장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쌓아가는 전략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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