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해운 산업이 미국과 중국 간 통상 갈등의 중심에 들어섰다. 중국 정부가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 5곳에 대한 제재를 1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하면서 통상과 안보가 얽힌 불확실성이 잠시나마 누그러진 분위기다.
이번 결정의 실질적 의미도 작지 않다. 유예 대상에 포함된 곳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필리조선소를 비롯해 한화쉬핑,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 한화쉬핑홀딩스, HS USA홀딩스 등이다. 이 회사들은 미국 내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 참여 기업으로 꼽혀 왔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들을 전략적으로 견제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미국 무역대표부가 중국 해운·물류·조선업을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 조사에 들어가자, 대응 차원에서 한화오션 계열사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그 이유로는 '미국 정부 조사에 협조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무역·제재 확전을 자제하기로 하면서, 중국 상무부도 미국이 이 분야 조사를 1년간 중단하는 데 맞춰 한화오션 자회사에 대한 제재 역시 같은 기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한화오션은 "중국 정부의 결정을 환영하며, 이번 조치를 계기로 현지 사업 파트너와의 관계도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내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기적으로 조선·해운 산업의 불확실성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이 심화될 때마다 '제3자 리스크'에 노출됐던 한국 기업들도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유예'에 불과하다는 점은 여전히 불안 요소로 남는다. 중국 정부 역시 이번 결정을 상징적 조치라고 설명한 만큼, 앞으로 미·중 관계가 다시 악화될 경우 제재가 재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안에서 눈여겨볼 점은 세 가지다. 먼저 제재 유예의 적용 시점이다. 이번 조치는 11월 10일부터 효력이 생겼고 그때부터 1년간 제재와 조사가 모두 중단된다. 두 번째는 기업 전략의 재정비다. 한화오션은 미국 내 조선소를 가동해 미 조선시장 재건에 힘써왔는데 이번 유예로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세 번째로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다. 이번 사례는 조선·해운 산업이 통상, 안보, 수출입 규제 등 다양한 위험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업계에서는 한 곳에 치우친 전략을 넘어 다양한 글로벌 리스크 상황을 상정해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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