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데뷔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직업이든 이 연차가 원래 이런 걸까요. 마음잡기 어려운 시기인 것 같아요."
2015년 웹드라마 '두 여자 시즌1'에 출연하며 배우의 길에 들어선 이후, 2017년 영화 '여자들'로 정식 데뷔해 '죄 많은 소녀' '악질경찰', 드라마 '화양연화' '청순월담',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 '멜로무비' '당신이 죽였다' 등에 출연하며 주연 배우로 입지를 굳힌 배우 전소니가 이렇게 말했다.
신작 '당신이 죽였다'에서 내면 연기부터 액션까지 열연을 펼친 전소니를 지난 10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품과 관련한 비하인드 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신이 죽였다'는 죽거나 죽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살인을 결심한 두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 전소니는 백화점 명품관 VIP 전담팀에서 일하는 '조은수' 역을 맡았다. '은수'는 과거 가정폭력의 상처를 껴안은 채 하나뿐인 단짝 친구 조희수(이유미 분)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인물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겉모습 뒤에 감춰진 인물의 불안과 트라우마를 섬세한 표정 연기와 절제된 감정선으로 표현하며 몰입도를 높였다.
전소니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장면을 상상하면서 상쾌하지 않은 이야기라 여겼다"라며 "시청자들이 어떻게 보실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전소니는 '은수'가 가족 일에는 제대로 나서지 못하다가 친구인 '희수'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직진한 것과 관련해 "(가정폭력을 당한) 엄마를 구하지 못한 시간이 후회로 남은 상태였다. 언젠가는 엄마를 데리고 나와서 아빠 없이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희수'가 겪은 상황을 본 이후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의 목격이나 경험으로 '살인'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쇄적인 것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소니는 "사실 어떤 사람을 대변하는 연기가 쉽지 않다. 대변할 자격이 없지 않나"라며 "감독님, 이유미 배우와 정말 많이 공부했다. 연기하는 '인물'에게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주어진 시간 전부를 썼다"고 전했다.
전소니는 "사실 제게는 '은수'처럼 대담한 면이 없다. 자신의 것을 내던지고 그렇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은수'가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감히 극에서 그를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라며 "다만 과거 후회되는 경험을 다시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은 저와 비슷했다. 저 또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몰아붙일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은수'는 주짓수 도장에서 자신을 단련한다. 실제로 극한의 상황에서 주짓수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전소니는 "2~3달 정도 주짓수를 배우고 연습했다. 완벽하게 배우기에는 기술이 방대하더라"라며 "쉽지 않았다. 물고 늘어지고 잡아당겨야 하는 등 사람과 엉키는 부분이 많아 대역을 쓰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역 없이 스스로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또한 '진소백'(이무생) 사장이 '은수'에게 "안에서 미친X가 나온 적 있냐"고 던지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이와 관련해 전소니에게 "미친X가 튀어나올 뻔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전소니는 "자주 튀어 나왔다면 연기를 더 잘하지 않았을까 싶다. 살면서 딱히 없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사실 저는 용기가 없다.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억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뒤돌아서서 '이야기라도 해볼걸' 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계속해서 전소니는 '당신이 죽였다'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이유미, 장승조, 이무생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유미랑 '희수'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다. 현장에서 유미는 밝고 웃음이 많은,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작품이 워낙 무거워서 심적으로 힘들 수 있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현장에서 일부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가며 웃고 떠들자고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장승조 선배는 엄청 다정하다. 특유의 스윗한 말투가 있다. 늘 수줍어 하셔서 '잘생겼다'며 더 장난을 쳤다"며 웃었다. 또 "이무생 선배는 진짜 '진 사장님' 같았다. 속이 잘 안 보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긴장될 때도 있었지만, 도움을 청하면 내 편이 될 것 같은 든든함도 있었다. 선배의 기운 자체가 '은수'를 연기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전소니는 "배우들, 감독님을 비롯한 현장이 너무 좋았다. 작품을 하는 자체로 행복했다"라며 "촬영이 끝나기 2-3주 전 쯤이었나. 자동차 신을 찍고 나서 엉엉 울었다. 평소 작품이 끝나도 울지 않는데, 주변 사람들이 영문을 모를 정도로 울었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몰랐다. 그런데 확실 한 건 촬영이 끝나는 게 무서울 정도로 싫었다"고 했다.
'가정폭력' 소재 작품에 출연한 것과 관련해 "제게서 굉장히 멀리 있는 일은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라며 사람들 마음에 어떤 질문을 남길 수 있을지, 어떤 생각을 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생존자들에게도 위로가 되고,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결코 남 일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폭력'은 용납이 안 된다. 처벌이 어려운 케이스를 볼 때마다 다 됐고, 가해자가 똑같이 한 번만 당해 봤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당신이 죽였다'에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랫집 아주머니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않았어도 '희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나"라며 "그것처럼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작지만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전했다.
데뷔한 지 8년이다. 한때 전소니는 1970년대를 풍미한 쌍둥이 자매 그룹 '바니걸스' 멤버 고재숙의 딸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이후 배우로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 가면서 '고재숙 딸'이라는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소니는 "사실 엄마만큼 사랑 받아보고 싶다. 여전히 엄마의 성과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배우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는 더 알고 싶고, 빨리 해보고 싶은 마음만으로 달렸다"라며 "그러나 지금은 뭔가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도 있고, 알고 있었던 걸 모르게 되기도 하더라"라고 전했다.
전소니는 "모든 직업의 지금 연차들이 그런 걸까. 어느 순간 마음에 안 차고, 잘 가고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잡기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힘듦'은 어떻게 극복하려고 할까. 전소니는 "사실 뚜렷한 방법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보통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나. 마음이 지하로 꺼질 것 같을 때, 가까운 사람들이 꾸역꾸역 답을 찾아서 대답해주는 데 그걸로 해소되진 않는 것 같다. 저는 더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계속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창 혼란스러울 때 팬들이 보내준 편지를 봤다. 그 날 특히나 촬영이 힘들었는데 너무 고맙더라. 누군가는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봐 주는데, 정작 '나'는 약해져 있었다. 한동안 편지를 자주 꺼내 봤다"고 했다.
전소니는 "전작 '멜로무비'를 지나면서 나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었다. '은수'를 하면서는 전보다 많이 솔직해졌다. 마음이 움직이는 만큼 했고, 그래서 더 편하게 연기했다. 특히 극 중 인물을 알아가면서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된 건 처음이었다. 은수가 이랬겠지, 저랬겠지 하며 수첩에 적으면서 갑자기 '나'를 알겠더라.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다."며 웃었다.
한편 전소니는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