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The Asian Banker Global Financial Markets Awards 2025' 시상식에서 유현식 KB국민은행 수탁사업본부 상무(가운데)와 아시안뱅커 국제 자문위원인 Brian Wing Tai Lo,(좌측)
1973년 수교 이후 50년,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단순한 외교를 넘어 실질적 동반자 관계로 진화해왔다. 2023년 양국은 수교 50주년을 맞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Special Strategic Partnership)’로 격상했고,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닌 산업·기술·문화·안보 전반에서 구체적인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의 핵심국이자 2억 8천만 인구를 가진 세계 4위의 거대 시장이며, 한국은 기술력과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신흥경제 모델의 대표국가다. 양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고,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광물자원과 전략적 입지가 필요하다.
양국의 협력은 이미 현실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현대자동차는 자카르타 외곽 브카시에 대규모 전기차 공장을 세웠고, 포스코는 찔레곤 제철소를 중심으로 동남아 철강의 허브를 구축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인도네시아의 니켈을 기반으로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을 연결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한국을 ‘친환경 산업 전환의 기술 파트너’로 지목했다.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자원 수출국에서 벗어나 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려 하고, 한국은 이러한 전환을 기술로 돕는 형태의 ‘공생형 경제동맹’을 선택했다.
이러한 경제 협력의 이면에는 안보와 외교의 정교한 전략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요충지로,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지닌다.
한국은 이 지역을 ‘K-해양벨트’의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해양안보 협력·사이버보안·AI 무기체계 등 신안보 영역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KF-21 보라매 전투기 공동개발 사업이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개발비의 20%를 부담하는 주요 파트너로 참여하며, 한국과 함께 첨단 항공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중공업이 수출한 잠수함 기술, 그리고 한화디펜스의 지상무기 협력 등도 이미 두 나라의 방산 네트워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협력은 단순한 무기거래가 아니라, 아시아가 서방 중심의 무기 생태계를 벗어나 독자적 군사기술 축을 형성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한류의 확산은 경제·안보 협력을 넘어 문화적 신뢰의 기반이 되었다.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등 K-POP의 영향력은 인도네시아 청년층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류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K-에듀케이션’, ‘K-스타트업’, ‘K-테크’로 확장되고 있다.
자카르타 한국문화원과 세종학당, KOICA가 운영하는 디지털 역량 프로그램은 인도네시아 청년에게 실질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에는 약 3만 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유학생이 체류하며,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학 연구현장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고 있다.
문화의 흐름이 사람의 이동으로 이어지고, 사람의 이동이 다시 경제의 순환을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자원과 기술’의 교환을 넘어 ‘지능과 신뢰’의 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연산력과 데이터, 그리고 이를 함께 나누는 시스템에 달려 있다. 한국의 AI 반도체 기술과 인도네시아의 데이터 인프라·청년 인구는 서로를 보완하는 완벽한 조합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스마트 네이션 전략’과 한국의 ‘K-이니셔티브’가 만날 때, 두 나라는 아시아의 디지털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국의 디지털 원화(K-CBDC) 구상과 인도네시아의 루피아 디지털화 정책이 연계된다면, 아세안 지역에서 새로운 결제·무역 플랫폼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인도네시아 협력의 본질은 과거의 산업화 모델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AI 문명을 함께 설계하는 데 있다. 이제 양국의 50년은 ‘기술동맹’의 이름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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