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세계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전후 냉전 시대가 탈냉전 시대로 바뀐 것이 20세기 말이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그러나 지난 세대 동안 발생한 전 세계적 현상들은 탈냉전이라는 후행적 표현으로 담기엔 여러 분야에서 판이 바뀌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 미 뉴욕타임스(NYT)의 외교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10일(현지시각) 폴리세(polycene; 다중세)라는 표현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새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런데 새 시대를 뭐라고 부를까?(Welcome to Our New Era. What Do we Call It?”이라는 칼럼에서 그같이 밝혔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
1989년 이후 미국의 단극 지배 시대는 2020년에 끝났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냉전 및 탈냉전 안보 구조를 무너트렸다. 이어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경제, 군사 경쟁자로 떠올랐다.
많은 기후 과학자들이 우리의 현재 시대를 인간이 주도하는 최초의 기후 시대라는 의미에서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른다. 또 현대 세계는 “정보화 시대”, “인공지능 시대”로 불리기도 하며 전략가들은 “지정학의 복귀”라고 부르고 역사학자 로버트 케이건은 “정글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떤 명칭도 가속화되는 기후변화와 기술, 생명과학, 인지, 연결성, 재료과학, 지정학과 지경학에서의 빠른 변환 사이에서 벌어지는 완전한 융합을 포착하지 못한다.
현대는 온갖 것들이 온갖 다른 것들과 결합하는 다중 시스템이 이원 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다.
인공지능은 “폴리매스(polymath; 다중재능)적 인공 일반지능”을 향해 질주하고, 기후변화는 “폴리크라이시스(polycrisis; 다중위기)”를 초래하며, 지정학은 “다중 중심적(polycentric)”이고 “폴리아모러스(polyarmorous; 다중 관계)한” 정렬로 진화하고, 무역은 “폴리-이코노믹(poly-economic; 다중 경제)” 공급망 그물로 짜여지고 사회는 점점 더 “폴리모픽(polymorphic; 다중 형태)” 모자이크로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 사회는 과거의 좌·우 이원 시스템이 다중으로 상호연결된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냉전과 탈냉전 패러다임을 산산조각내고 있다.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연구책임자 크레이그 먼디가 폴리세(polycene; 복합연결의 시대라는 의미의 다중세))라고 이름붙였다.
“많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폴리(poly)”와 시대를 가리키는 접미사 “세(-cene)”를 결합한 조어다.
◆보편적 연결성의 시대
스마트폰, 컴퓨터, 보편적 연결성 덕분에 - 모든 사람과 모든 기계가 서로에게, 그리고 지구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속도와 규모로 목소리를 내고 지렛대를 행사하는 - 이 새로운 시대에 꼭 맞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폴리세(다중세)는 일반인공지능(AGI)의 실현, AGI 컴퓨팅을 가능하게 하는 다중 병렬 연결 마이크로칩을 활용한 수퍼컴퓨터의 발전, 기후변화,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다중 위기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용어다.
지정학적으로도 세계는 더 이상 강국이 주도하는 시대가 아니다.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만의 시대가 아닌 것이다. 브라질, 인도, 튀르키예, 걸프국가들, 남아프리카 등의 여러 나라들이 하나의 진영에 스스로를 속박하지 않고 사안별로 이익을 추구한다.
전쟁도 더 이상 하나의 전선으로 구분되는 방식이 아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싸우는 동시에 서유럽과는 사이버 공간에서 전쟁을 벌인다.
공동체도 더 이상 이원적이지 않으며 다형(polymorphic)적이다. 과거에 다양성은 환영받지 못했으나 지금은 아니다. 글로벌 이주가 1990년대 이래 두 배로 증가했다.
남아시아 노동자가 페르시아 만으로 이동하고, 아프리카 학생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수단과 에리트레아 난민이 이스라엘로 이동하고, 폴란드 노동자가 영국으로 이동하고, 시리아·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 난민이 어디든지 이동하기 때문에 한때 단일 민족이나 신앙으로 정의된 공동체들이 이제는 다언어, 다색, 다종교다.
◆뉴스 생성도 상향식에서 병렬식, 상향식으로
공동체들에 대한 뉴스도 신문, 잡지, TV 네트워크 같은 주류 매체가 하향식으로 생성하는 것에서 소셜 미디어에 의해 옆으로 옆으로 생성되고 블로거나 팟캐스터들에 의해 아래에서 위로 생성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각국이 가장 잘 만드는 상품을 생산해 교역하면 모두가 발전한다는 무역의 원리도 더 이상 적용하기 어렵다.
오늘날 경제는 국가들 간 개별 상품의 무역에 기반하지 않으며 지식, 기술, 기술력, 신뢰가 서로 얽힌 글로벌 생태계 안에서 작동한다. 이른바 “상호의존적인 지식의 거미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무역이 2개 이상의 국가를 포함하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오늘날 글로벌 공급망이 “국경을 여러 차례 넘나드는 서비스, 원자재, 부품과 구성요소로 인해, 국제무역의 약 7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오늘날 폴리신(Polycene)에서는 지식과 역량을 모아 놓으면, 어느 한 나라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복잡한 물건을 더 싸고 더 빨리 만들 수 있다.
스마트폰 안에 있는 칩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캘리포니아에서 상상되었고, 미국과 유럽의 소프트웨어로 설계되고, 대만에서 네덜란드의 리소그래피 장비와 일본과 실리콘밸리의 재료 과학 혁신을 이용해 제조되고, 중국에서 조립되어 글로벌 물류망을 통해 배송된다.
많은 민주화된 선진국들이 복지국가 또는 좌우 기반 양당제가 최선의 통치방식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런 통치 방식이 더는 작동하기 어렵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대부분 “둘 중 하나”의 답이 아닌 “둘 다/그리고” 식의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핵심 행위자들은 동시에 여러 상태를 점유할 수 있어야 하며, 상충되는 아이디어들을 동시에 긴장 속에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전 지구적 차원의 통치, 혁신, 협업, 공존 필요
폴리세(다중세)에서는, 최고의 답은 양 끝이 아니라 합성으로 가능해진다.
폴리세에서 가장 적응성 높고 회복력 강하며 생산성이 높은 공동체는 이슈를 넘어 역동적 연합을 만들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기업, 노동, 정부, 민간 부문이 힘을 합해 서로를 배격하는 방식이 아니라 합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것만이 빨리 움직이고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상호의존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이다. 기업철학자 도브 세이드먼은 “우리는 건강한 상호의존을 구축해 함께 상승하거나, 병든 상호의존으로 함께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많은 지도자들이 폴리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류가 번영을 지속하려면 행성 규모에서 통치하고, 혁신하고, 협업하고, 공존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AI, 핵에너지,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최선은 붙잡고 최악은 완충할 수 있다. 전 세계 모두가 함께 노를 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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