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수사권 조정 4년이 지났지만, 경찰의 사건 처리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사건이 폭증했는데도 인력·관리·점검 체계가 확충되지 않아 현장이 마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통계조차 없어 병목 요인을 파악할 방법도 없었다. 자치경찰제도 조직·예산·권한이 분리된 채 운영돼 지역 치안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사건은 늘었는데 인력은 ‘제자리’…처리 기간은 계속 늘어
감사원은 10일 발표한 경찰청·서울경찰청·부산경찰청 정기감사 결과에서 “2021년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구조적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 접수 사건은 조정 이전보다 28.6% 증가했고,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재수사 요청도 18.1% 늘었다. 그러나 수사 인력은 8.8% 증원에 그쳤다. 증가하는 업무량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사 지연은 수치로 나타났다. 경찰이 직접 입건한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2020년 59.7일 → 2023년 63.9일로 늘었다. 모든 사건이 1차 종결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도 55.6일에서 56.2일로 길어졌다. ‘표면적 증가폭은 작아 보이지만 초기 단계 지연은 이후 절차 전반에 영향을 미쳐 누적 부담이 커진다’는 게 실무 현장의 일관된 지적이다.
◇‘전체 수사 기간’ 통계조차 없다…관리체계는 사실상 공백
전체 수사 기간을 관리하는 통계는 사실상 전무하다.
경찰은 1차 종결까지의 기간만 집계하고, 검찰의 보완 요구나 재수사 지시로 재개된 기간은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사유 분석, 유형화, 병목 요인 검증은 전무했다. 감사원은 “현장의 주요 지연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는 구조적 공백”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별도로 자료를 종합해 추산한 결과, 보완·재수사 사건의 실제 처리 기간은 2024년 기준 평균 140.9일에 달했다. 신속성도, 완결성도 담보되지 않는 구조적 결함이 드러난 셈이다. 통계 관리부터 인력 배분까지 전반적 설계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강력범죄 재조사 지시도 ‘방치’…점검·지휘 기능 사실상 무력화
현장 점검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서울·부산경찰청은 강력범죄 13건에 대해 자체 점검 후 재조사를 지시했지만, 이 가운데 4건은 실제 재조사 없이 방치됐다.
지시 단계에서 문제가 확인됐음에도 실행 단계에서 통제력이 무너진 셈이다. 감사원은 “지휘부와 실무 조직 간 이행 체계가 단절돼 있다”고 평가했다.
◇자치경찰제는 ‘반쪽’…조직·예산·권한 분리 없이 운영
수사권 조정과 함께 도입된 자치경찰제 역시 겉돌고 있다. 감사원은 “독립된 조직 없이 기존 국가경찰 조직 내에서 국가·자치 사무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지역 치안 서비스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조직·예산·권한·책임 구조의 재설계 없이 제도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 구조도 미비해 지역 맞춤형 치안 서비스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내부 기강도 흔들…개인정보 조회·복무규율 위반 등 일탈 사례 다수
감사원은 개인정보 조회 남용과 복무규율 위반 등 다수의 위법·일탈 행위도 적발했다. 전 연인이나 연예인의 개인정보를 업무와 무관하게 조회한 사례, 로스쿨 진학 과정에서 복무 규정을 어긴 사례까지 확인됐다.
스토킹 신고 112콜을 잘못 분류해 피해자 보호 조치가 누락된 사례도 드러났다.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매뉴얼 숙지·교육·감독 체계가 구조적으로 약화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수사권 조정의 후유증…설계 보완 없으면 악순환 심화
감사 결과는 ‘수사권 확대가 준비 부족과 만나면 수사 품질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사건 폭증 → 인력 부족 → 처리 지연 → 보완·재수사 누적 → 통계 관리 부재 → 품질 저하’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경찰청은 실제 수사 기간을 통합 관리할 체계를 구축하고, 보완·재수사 사유를 유형 분석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치경찰제 역시 독립 조직·예산·권한이 일체화되지 않는 현 구조에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치안 서비스 제공의 한계도 분명히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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