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냉정한 '청산가치 우위' 원칙
15년전인 2010년 소셜 커머스의 혁신을 이끌었던 1세대 이커머스 주역 위메프가 마침내 법적 청산 수순을 밟게 됐다.
서울회생법원 회생3부는 10일 위메프에 대해 파산을 선고했다. 이는 지난해 7월 말 대규모 미정산·미환불 사태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1년 4개월 만의 최종 결정이다.
법원의 판단은 냉혹했다. 재판부는 회사를 청산할 때의 가치(청산가치)가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계속기업가치)보다 현저히 크다는 '청산 가치 우위 원칙'을 근거로 회생 절차를 폐지했다. 법원이 산정한 위메프의 계속기업가치는 무려 마이너스(-) 2,234억 원이었던 반면, 청산가치는 134억 원에 불과했다. 수정 후 총자산은 486억 원이었지만, 총 부채는 4,462억 원에 달해 , 회생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비단 위메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원은 이번 파산 선고를 통해, 부실 기업이 확실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시간만 끄는 비현실적인 구조조정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정책적 경고를 시장에 보냈다. 현재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와 같은 후발 주자들에게도 긴장감을 안겨주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금융의 암세포: 모기업발 재무 오염
위메프 파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커머스 경쟁력 약화를 넘어선, 모회사 원더홀딩스의 심각한 재무 부실에 있다. 위메프 창업주 허민(49) 전 네오플 대표가 이끄는 원더홀딩스는 큐텐 매각 전까지 위메프 지분 86.2%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다.
놀랍게도 원더홀딩스는 위메프 매각 전인 2023년 기준으로 이미 자본총계 마이너스(-) 2,398억 원에 달하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이는 핵심 게임 개발 자회사들의 연이은 사업 실패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원더피플은 '슈퍼피플'의 흥행 실패로 -1,447억 원의 자본총계를 기록했고, 에이스톰 역시 서비스 종료를 앞두며 -545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형적인 '그룹사의 재무적 오염(Financial Contamination)' 사례로 진단된다. 게임 부문의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모회사가 이커머스 플랫폼인 위메프의 유동성을 활용하려 했거나, 플랫폼의 부실이 그룹의 다른 부채와 얽히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더구나 원더홀딩스는 2023년 10월 주식회사로 전환한 지 불과 한 달 반 만에 유한책임회사로 다시 변경했다. 유한책임회사는 주식회사와 달리 외부 공시나 감사 의무가 없어 '정보 공개의 사각지대'로 불린다. 이미 부실이 심화된 상황에서 경영 책임을 회피하고 투자자 및 채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적인 지배 구조 회피 전략으로 비판받고 있다.
부실자산 매각 불구 현금 못챙겨?
이 와중에 위메프는 2023년 4월 싱가포르 기반 플랫폼 큐텐(Qoo10)에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하지만 이 거래는 현금 대신 큐텐 주식과 위메프 지분을 교환하는 '지분 스왑(Stock Swap)'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부실 자산(위메프)을 매각하면서도 유동성(현금)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대신 불안정한 큐텐 주식(원더홀딩스는 큐텐의 3대 주주가 됨 )을 받았던 것이 더 큰 화근이었다. 이후 '티메프 사태'가 터지면서 큐텐의 주식 가치마저 급락, 사실상 '휴지조각'이 될 위험에 처했고 , 이는 위메프의 유동성 확보와 경영 정상화를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결국 2024년 7월 불거진 대규모 미정산 사태는 플랫폼의 유동성 위기가 폭발한 증거였다. 플랫폼이 2차 PG(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 역할을 수행하며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금을 운영 자금으로 '혼장(Commingling·여러 계좌를 섞어 관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경영난이 심화되자 자금 전용이라는 재무적 악수를 두었음을 시사한다.
10만명 피해자 구제 대책은 0
이번 파산 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결과는 채권자들의 피해다. 티메프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위메프 미정산 피해자는 최대 11만 명에서 12만 명으로 추산된다. 총 피해액은 최소 4,000억 원에서 최대 6,000억 원(일부 자료 5,800억 원)에 달한다.
파산 절차에서 위메프의 총자산(486억 원)은 총 부채(4,462억 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파산관재인이 자산을 현금화해도 임금, 퇴직금, 조세 등 재단채권이 일반 채권보다 우선적으로 변제되기 때문에, 협력업체와 소비자로 구성된 일반 채권자들이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위메프의 10만 피해자들은 구제율 0%, 즉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는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플랫폼이 2차 PG 역할을 통해 잠시 보관해야 했던 판매 대금(신탁 자금 성격)이 현행법상 일반 채무로 분류되어 재단채권에 밀려버리는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메프의 파산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신뢰를 잃은 판매자들은 이제 재무적 안정성이 담보된 플랫폼으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네이버, 쿠팡, 그리고 C-커머스인 알리익스프레스 등이 이탈하는 셀러를 흡수하며 시장의 과점화 및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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