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에 최고 높이 141.9m 건물이 들어서는 세운4구역 서울 도심 재개발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격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김민석 국무총리와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지난 주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서울 도심 재개발을 둘러싸고 충돌한 데 이어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또 다시 부딪혔다.
김 총리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에 초고층 개발 계획을 발표한 서울시를 공개 비판하면서 10일 현장 방문을 예고했다.
이 과정에서 김 총리는 "최근 한강버스 추진 과정에서 물의를 빚은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 기존 계획보다 두 배 높게 짓겠다는 서울시의 발상은 세계유산특별법이 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고 국익적 관점에서도 근시안적인 단견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하며 오 시장을 직격했다.
이어 종묘를 둘러본 뒤 "높은 건물이 가린다면 숨이 막히겠다"고 하자 오 시장은 "종묘와 멋지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할 것"이라고 반박하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金 "왕도 함부로 못 지나간 길…국민토론 거칠 문제" 주장
김 총리는 10일 종묘를 찾아 "종묘 바로 코앞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에서 보는 눈을 가리고 숨을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르게 하는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이라며 "최근에 김건희 씨가 종묘를 마구 드나든 것 때문에 국민들이 모욕감을 느꼈을 텐데 이 논란으로 국민들의 걱정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날 김 총리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김경민 서울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신희권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사무총장과 함께 종묘를 둘러봤다.
허 청장은 "종묘는 어느 왕도 함부로 지나갈 수 없는 길로 조심하는 지역"이라고 말했고 이에 김 총리는 "왕도 함부로 지나가지 못하는 길인데 그렇게 한 거였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총리는 정전 앞에서 종묘와 역사에 관한 설명을 듣고 풍경을 조망한 뒤 "(종묘 앞 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바로 턱하고 숨이 막히게 된다. 개발을 놔두면 기가 막힌 경관이 된다"며 "대한민국 국민을 넘어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하고, 종묘 인근에 개발하더라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국민적인 토론을 거쳐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한 시기에 시장이 그렇게 마구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총리는 "문화, K관광이 부흥하는 시점에 있기 때문에 문화와 경제의 미래 모두를 망칠 수도 있는 결정을 지금 하면 안 된다는 관점에서 정부가 아주 깊은 책임감을 갖고 이 문제에 임하겠다"며 "정부도 이 문제가 일방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방책도 마련하고 국민적 관심과 공론, 토론 속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장을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무쪼록 서울시에서도 역사적 가치, 문화적 의미, 경제적 미래, 국민적 공론을 깊이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그냥 처리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 시장 "재정비 사업은 종묘 가치 높이는 일…공개토론 하자"
오 시장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민석 국무총리가 직접 종묘를 방문해 현장 점검하신다는 보도를 접했다. 가신 김에 종묘만 보고 올 게 아니라 세운상가 일대를 모두 둘러보시기를 권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종로가 현재 어떤 모습인지, 이대로 방치하는 것이 과연 종묘를 위한 일인지 냉정한 눈으로 봐주시길 요청한다"며 "60년이 다 되도록 판잣집 지붕으로 뒤덮여 폐허처럼 방치된 세운상가 일대는 말 그대로 처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의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사업은 종묘를 훼손할 일이 결단코 없다. 오히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생태·문화적 가치를 높여 더 많은 분이 종묘를 찾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녹지 축 양옆으로 종묘에서 멀어질수록 아주 낮은 건물부터 높은 건물까지 단계적으로 조성해 종묘와 멋지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할 것"이라며 "남산부터 종묘까지 쭉 뻗은 녹지축이 생기면 흉물스러운 세운상가가 종묘를 가로막을 일은 없다. 시원하게 뚫린 가로 숲길을 통해 남산부터 종묘까지 가는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설명다.
그는 "서울의 중심인 종로의 미관이 바뀌고 도시의 새로운 활력이 생기며 K-컬처와 시너지 효과를 내며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정작 이 내용은 무시한 채, 중앙정부가 나서서 일방적으로 서울시를 매도하고 있어 유감"이라며 "사업의 구체적 계획을 놓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머리를 맞대자고 제안했는데 소통은 외면하고 정치적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중앙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국무총리와 공개토론을 제안한다. 이른 시일 내에 만나 대화하자"고 말했다.
최휘영과도 충돌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 비판에…吳 "과한 우려"
지난 7일 오 시장은 종묘를 찾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도 충돌했다.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 훼손 우려"를 강하게 제기하자 오 시장은 "근거 없는 과도한 우려"라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최 장관은 7일 종묘 정전을 직접 찾아 "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종묘를 지키겠다"며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의 높이 규제 완화가 "종묘를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해괴망측한 구도"를 만들 것이라며 서울시를 직격했다.
그는 "1960~70년대식 난개발 행정이다.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발상"이라며 서울시 책임론을 제기했다. 동석한 허민 국가유산청장도 "유산 보호의 책임이 있는 서울시가 위험을 자초했다"며 최 장관을 거들었다.
정부 수장의 공개 질타에 오 시장도 즉각 맞섰다. 오 시장은 7일 오후 세운상가 옥상정원을 찾아 문체부·유산청의 비판을 "심각한 왜곡"이라 규정하며 "서울시 사업이 종묘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했다.
오 시장은 "오히려 남산-종로-종묘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조성해 역사·생태적 접근성을 높이게 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난 20년간 서울시가 추진해온 율곡로 녹지 연결, 창경궁·종묘 연계 복원 사례를 일일이 거론하며 "종묘의 가치를 낮춘 것이 아니라 높여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재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한양도성·낙산·종묘 담장 순라길·경복궁 월대 복원 등도 서울시가 완성했다"며 "세운지구 일대가 지금은 폐허처럼 방치돼 있어 역사도, 품격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개발 필요성을 부각했다.
최 장관의 발언에 대해선 "아무런 협의도 없이 자극적 용어를 쓰며 지방정부 사업을 일방적 폄훼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한 뒤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재편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며 만남을 제안했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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