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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전남)=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고입 탈락자들이 오던 학교에서 명문고로 탈바꿈한 학교가 있다. 그것도 지역 인구가 줄고 있는 전남 담양의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1980년 개교한 전남 담양의 창평고는 과거 광주 시내 고입에서 불합격한 학생들이 주로 입학하던 학교였다. 하지만 지금은 광주·전남지역 최고의 명문고로 자리 잡았다.
10일 창평고에서 만난 김성문 정보부장은 “개교 초기만 해도 학기 초 12개 학급이 편성됐다면 학기 중 연락이 두절 되는 학생들이 있어서 1~2개 학급이 줄어들기도 했다”며 “매년 중도 탈락 학생이 많아서 교사들의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창평고가 인구 감소 지역에서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90년대 후반에 도입된 농어촌 특례 입학(현 농어촌특별전형)과 전교생 기숙사 생활, 교사들의 헌신이 있다. 농어촌 특례 입학이 시행되면서 지방 소재 고교인 창평고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전교생 기숙사 생활을 의무화하면서 학교 발전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 본연의 목적인 ‘대입’에 주력함으로써 명문고로 부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영수 창평고 교장은 “학생의 학업 역량을 신장시켜 희망하는 대학·학과에 진학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창평고는 사교육 없이 수시와 정시까지 대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창평고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서울대 4명 △의학계열(의대·치대·한의대·약대) 19명 △경찰대 1명 △KAIST 등 과학기술대 7명 △포항공대 2명 △사관학교 18명 △고려대 13명 △연세대 3명 △성균관대 19명 △서강대 11명 △한양대 4명 △이화여대 6명 등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농어촌 지역에서 괄목할 만한 입학 실적을 내다보니 전남도 전체에서 ‘가고 싶은 명문고’로 자리매김했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올해 창평고에 입학한 김기석 군은 “학교의 면학 분위기가 우수하다고 해서 진학하게 됐다”고 했다.
창평고가 소재한 전남 담양군 인구는 2024년 4만 5860명에서 올해 9월 기준 4만 5455명으로 405명 감소했다. 하지만 창평고 전교생 수는 같은 기간 583명에서 611명으로 오히려 28명 늘었다. 전교생 중 60% 이상은 담양군 외 전남도 전역과 타 시도에서 입학한 학생들이다.
창평고가 전남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교사들의 헌신에서 비롯됐다. 교사들이 나서 학업에 열의를 가진 학생들을 선발해 심화반을 운영한 것. 이어 심화반에서 가시적인 입학 실적을 내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창평고 관계자는 “교사들이 별도의 수당 없이 야간에도 보충수업을 하면서 열의를 보였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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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창평고가 2017년부터 시행한 ‘전교생 기숙사 생활’ 의무화는 지금의 창평고를 있게 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 창평고 학생들은 정규수업과 방과후 보충수업, 수준별 수업을 마친 뒤 기숙사에서 야간까지 자습하는 게 일상이다. 기숙사 자습 땐 생활 담임 교사들이 지도·감독을 맡고 있다. 창평고를 졸업하고 올해 서울대 첨단융합학부에 입학한 장시준(가명) 씨는 “수업 후 밤에 기숙사 생활을 감독해 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창평고의 기숙사 생활은 학생들의 학업뿐만 아니라 사회성과 책임감을 성장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3학년 김민찬 학생은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하는 법,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48) 씨 역시 “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갖게 돼 만족스럽다”고 했다.
창평고의 전체 교사 수는 총 53명으로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1.5명이다. 도시 과밀학급보다는 학생 수가 적어 밀착 지도가 가능하다. 창평고가 ‘교사 후견인’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창평고 교사들은 각각 학생 3명의 후견인이 돼 학교생활 전반을 지도하고 있다. 2학년 김새롬(가명) 학생은 “기숙 학교라 입학 후 부담이 컸는데 후견인 제도가 있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며 “창평고가 입시 실적이 좋은 이유는 선생님들이 과외교사처럼 지도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평고는 정시뿐만 아니라 수시를 통해서도 명문대 합격생을 다수 배출하고 있다. 김성태 진학부장은 “학생의 희망 진로에 맞게 학생부가 갖춰질 수 있도록 교사들이 학생들과 주기적으로 상담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학생 스스로 교육 활동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창평고도 올해 고1부터 전면 시행된 고교 학점제에 따라 여러 선택과목을 개설했다. 하지만 교사들이 맡을 수 있는 과목에 한계가 있어 일부 심화 과목의 경우 학생들이 인근 대학을 방문해 수업을 듣고 있다. 김성문 정보부장은 “농어촌 학생들도 다양한 선택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교육청에서 교육과정 공유 정책을 좀 더 강화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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