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국내 재즈의 무대가 서구적 즉흥성과 한국적 서정이 어우러지는 창조적 실험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구에서 발전한 재즈의 역동성과 한국적 정서가 가진 여운 깊은 서정성이 충돌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순간,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이 열리며 관객은 낯설지만 깊이 있는 울림을 경험한다.
이런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소리꾼 장사익의 재즈 협연이다. 장사익은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으며 재즈 밴드와 협업해 “한국의 노래와 재즈가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 신비롭게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달 캐나다 토론토 재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무대에서 장사익은 두루마기를 입고 한국적 색채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서정성이라는 개념이 멜로디와 언어적 이미지뿐 아니라, 전통적 몸짓과 악기, 정서적 맥락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근 한국 재즈 씬에서도 ‘한국적 선율’의 도입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에서는 재즈뿐 아니라 한국적 정서를 담은 선율까지 다채롭게 구성된 공연들이 등장하며, 재즈가 서구적 모티프를 따라가는 장르가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적 리듬과 음색, 정서적 서사가 재즈 구조 속에 자연스럽게 융합되면서 장르가 확장되는 순간이다.
재즈 아티스트 웅산은 이러한 흐름을 음악적 실천으로 이어가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지난 7일 싱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통해 시적 가곡과 재즈를 결합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작곡가 김주원이 서정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이번 작품에서, 웅산의 보컬은 시적 이미지 하나하나에 감정을 쌓아 올리며, 깊은 서정과 재즈적 자유를 동시에 구현한다.
웅산과 함께한 기타리스트 박윤우는 곡 전체의 감정을 함께 호흡하며, 한국 재즈 기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듀오가 만들어내는 정제된 감성과 섬세한 호흡은 청중에게 음악적 몰입과 감동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적 서정과 재즈가 충돌이 아닌 조화 속에서 만나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재즈는 본질적으로 즉흥성과 ‘지금-여기’의 표현성을 핵심으로 한다. 반면 한국적 서정은 여백과 울림, 고요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흐름을 중시한다. 웅산의 음악에서는 이 두 요소가 만나, 재즈적 자유와 서정적 여유가 교차하는 독특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대금, 해금, 거문고와 색소폰, 기타가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무대는 바로 이러한 융합의 산물이다.
장르적 충돌도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스윙과 즉흥 솔로 중심의 재즈 구조와, 잔잔한 멜로디와 여백을 강조하는 한국적 서정이 부딪힐 때, 그 균열은 단순한 불협화음이 아니라 확장의 계기가 된다. 웅산은 이런 균열을 음악적 실험으로 삼아, 한국적 서정이 재즈 속에서 단순 장식이 아닌, 핵심 표현 언어로 자리 잡도록 한다.
웅산의 2025년 콘서트 ‘All That Jazz’는 이러한 실험이 무대 위에서 현실화되는 사례다. 자작곡과 앨범 수록곡, 사랑받는 재즈 스탠다드, 대중가요를 재편곡한 공연에서는, 전통악기 연주자 이재하(거문고), 방지원(장구),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KON, 현대무용가 이루다가 함께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관객에게 즉흥과 서정, 다이나믹과 정적 미학이 교차하는 예술적 체험을 제공했다.
웅산의 활동은 국내외 사례와 결합되어, 한국적 서정과 재즈가 상호작용할 때의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적 서정이 가진 내재적 특성은 재즈와 만나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청중에게 새로운 울림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 재즈가 단지 서구의 모방이 아닌 자기만의 언어를 구축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결국, 한국적 서정과 재즈의 만남은 장르를 넘어 감성과 정서의 두께를 함께 나누는 자리다. 웅산의 음악과 무대는 이 만남이 음향적 실험을 넘어, 감성과 문화적 맥락까지 포괄하는 창조적 장임을 보여준다. 관객은 낯설지만 깊이 있는 울림 속에서 한국 재즈가 앞으로 나아갈 풍부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한국적 서정과 재즈의 조우는 한국 재즈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장이다. 웅산과 같은 아티스트의 지속적 시도 속에서, 한국 재즈는 고유한 서사성과 재즈적 자유를 함께 담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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