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18세기 베네치아 거리에는 얼굴을 검은 가면으로 덮은 여인들이 있었다. 그 가면은 착용자가 입으로 단추를 물어 얼굴에 고정했다. 그 때문에 가면을 쓴 여인들은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레타 마스크(Moretta Mask), 바로 ‘침묵의 마스크’다.
얼굴에는 검은 벨벳이 덮이고 입술은 단추에 막혀 미동조차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가면을 세련됨의 상징이라 여겼다. 숨이 막히고 불편해도 여인들은 그것을 우아함으로 견뎠다.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들 또한 여인들의 표정이 사라진 얼굴, 눈빛과 고갯짓만 남은 자태를 아름답다고 믿었다.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낯설고 기괴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과거의 이야기일 뿐일까.
얼마 전 여권이 만료되어 새로 사진을 찍었다. 10년 전 젊은 얼굴이 담긴 여권을 보며 잠시 아쉬워했는데 새로 찍은 내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매끈했다. 기미와 잡티는 사라졌고 턱선은 정리되어 있었다. 눈은 또렷하게 빛났고 피부는 한결 밝았다. 화면 속의 나는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이 정도로만 보정할게요. 여권 사진이라 더 손댈 수는 없어요.” 사진작가의 말에 괜히 안도했다. ‘이건 과하지 않다’는 변명처럼 들려서였다. 하지만 곧 이상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 사진 속 얼굴은 분명 나인데 동시에 내가 아니었다. 여권은 신분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다. 그런데 정작 나의 얼굴은 ‘실제의 나’를 닮지 않았다. 현재의 미적 기준에 맞춘 내가 아닌 얼굴. 나는 나의 모레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 마스크는 비단 얼굴만 덮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과 생각, 그리고 지구까지 덮고 있다. 18세기 화가 피에트로 롱기(Pietro Longhi, 1701-1785)의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Exhibition of a Rhinoceros at Venice, 1751)’를 보면 그 시대의 아이러니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앙에는 인도에서 온 코뿔소 클라라가 서 있다. 단단한 피부와 느릿한 움직임, 생명의 온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앞의 귀족들은 가면을 쓴 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누구 하나 진짜 생명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 중 한 여인은 모레타 마스크를 쓴 채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있다. 먹물과도 같은 검은 가면이 얼굴을 완전히 덮고 눈만이 희미하게 빛난다. 그는 코뿔소를 보러왔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그녀가 그 자리에 선 이유는 코뿔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마스크를 쓴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다. 화려한 의상과 침묵의 가면은 그녀의 장식이자 족쇄다. 그녀는 아름다움의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 답답함을 삼키고 그곳에 서 있다.
롱기는 누가 전시되고 누가 관람자인지 헷갈리게 만들면서 그 실태를 조롱하는 듯 보인다. 살아있는 것은 코뿔소였고 죽어있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었다.
그 장면은 오늘의 우리와 닮았다. 지구가 살아있는 코뿔소처럼 숨을 쉬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구경한다. 산업의 상처를 조명으로 덮고 오염된 하늘 위에 광고판을 세우며 예쁘게 포장된 지구를 소비한다. 지구는 점점 더 예뻐 보이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이다. 가면 아래에는 버티느라 지쳐버린 지구의 숨이 웅크리고 있다.
모레타 마스크를 쓴 여인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말을 잃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예뻐 보이기 위해 부자연스러움을 입는다. 사진 속의 나는 잡티 하나 없이 고르게 정돈되었지만 그 속엔 살아있는 온기가 없었다. 지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위에 인공의 광택을 덧칠하며 자연의 주름과 거친 숨결을 지워버린다. 더 나아 보이기 위해 가면을 썼다는 점에서 나는 지구를 닮았고 지구는 나를 닮았다.
이제는 그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불완전하더라도 살아있는 얼굴로 돌아가야 한다. 지구도 광택을 덜어내고 진짜 숨결을 드러낼 때 비로소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덮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일이다. 여권 사진 속 보정된 나를 마주하며 느꼈던 낯선 감정, 그 불편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만든 부자연스러움이 결국 지구의 숨을 막고 있다. 이제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 대신 숨 쉬는 아름다움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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