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현장에서 챗GPT 등 인공지능(AI) 활용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그로인한 부작용 또한 속출하고 있다. 단순한 과제 보조를 넘어 시험 중 부정 활용 사례까지 잇따르면서 교육현장에서 AI 활용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활용 자체를 통제할 기술이 사실상 없는 만큼 학생 스스로 윤리적 기준을 세우고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4년제·6년제 대학 재학생 7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1.7%가 과제나 프로젝트를 위한 자료 검색에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단순한 정보 탐색을 넘어 보고서 작성이나 발표자료 구성 등 학습 전반에 활용하고 있다는 응답했다. 대학 내에서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더 이상 일부의 도구가 아니라 일상적 학습 보조 수단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세종대학교 재학생 김지연 씨(21·여)는 "주변 친구나 선배 대부분이 챗GPT를 쓰고 있다"며 "나만 안 쓰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 사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를 단순히 얻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거나 문장을 다듬는 데 도움을 받는다"며 "이제는 활용 여부보다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분위기다"고 밝혔다.
유경연 씨(27·남)도 "몇 년 전만 해도 AI를 공부에 쓰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지금은 안 쓰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다"며 "계산식 검토나 코딩 오류 탐색, 논문 자료 정리까지 거의 모든 과제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 활용이 일부 학생들에게 '편의'를 넘어 '부정행위'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는 '자연어(NLP) 처리와 챗지피티' 과목의 담당 교수가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 사실을 공지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지난달 15일 진행된 비대면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캡처하거나 다른 프로그램 창을 띄워놓은 뒤 AI를 활용한 정황이 영상으로 확인된 것이다. 교수는 "영상 확인 결과 부정행위가 매우 다수 발견됐다"며 "자수한 학생에 한해 중간고사만 0점 처리하겠지만, 숨긴 경우 학칙에 따라 유기정학 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했다.
해당 강의는 600명 규모의 대형 교양과목으로, 모든 응시자는 시험 중 손과 얼굴, 화면을 촬영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일부 학생이 화면 일부를 잘라내거나 다른 창으로 전환해 AI 답변을 참고한 사실이 적발됐다. 학교 측은 AI의 도움을 받은 답안은 문체와 논리 구조가 명확히 드러나 확인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교육현장에서의 AI 활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호주, 캐나다, 영국 등에서도 대학생의 AI 부정행위가 확산되면서 각국이 대응에 나섰다. 호주 시드니대학교는 이미 2023년부터 챗GPT 논란이 커지자 온라인 과제와 오픈북 시험 비중을 줄이고 감독 하에 손으로 직접 작성하는 대면시험을 재도입했다. 당시 학교 측은 "AI 활용 여부를 완벽히 판별하기 어렵고, 사고의 과정을 직접 확인해야 평가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영국의 주요 대학들은 금지 대신 통제와 투명성 중심의 관리 체계를 택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를 비롯한 러셀그룹 24개 대학은 '생성형 AI 활용 원칙'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AI를 완전 금지하는 대신 사용 기록을 제출하도록 했다. 학생이 챗GPT 등 도구를 과제나 시험에 사용한 경우 입력한 질문(프롬프트)과 모델의 응답, 본인이 수정·보완한 과정 등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는 AI의 존재를 숨기기보다는 활용을 제도권 안으로 포함시키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국내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교육 현장 확산이 불가피하다면 금지보다는 윤리적 기준을 내재화할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영임 가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AI는 잘만 활용하면 학습 효율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라며 "학생들에게 AI를 사용할 때 반드시 출처를 밝히고, 참고 내용을 명시하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지키지 않고 부정행위에 악용할 경우, 제도적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전창배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AI 도구를 통해 시간을 절약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지나친 의존은 판단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로선 챗GPT를 사용했는지 판별할 기술이 없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가 윤리적 책임감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AI 사용이 늘수록 사고력 중심의 서술형, 구술형 평가를 확대해 진정한 학습 과정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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