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예술가에겐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친 뒤 다시 커뮤니티 안으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이후 관리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는 과거 경기창작캠퍼스에서 자유롭게 작업하고 소설가 김훈 등 다양한 장르의 원로·중진작가들과 교류하며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다시, 집들이란’ 전시 이름처럼 옛 집에 다시 돌아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도민 앞에 선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공공갤러리’는 단순한 유통 플랫폼을 넘는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지난달 말 열린 경기창작캠퍼스(구 경기창작센터) ‘공공갤러리’ 개관기획전 ‘다시, 집들이’의 간담회에서 참여 작가 최기창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조선시대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서민의 시각과 감각을 동시대 회화로 확장해온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초충도’ 등 민중의 예술을 현대의 감각으로 재구성한 작업을 선보였다.
올해로 개관 16주년을 맞는 경기창작캠퍼스는 개관 이후 532명의 창작자들과 함께한 경기도 대표 예술 레지던시 공간이다. 그간 창작과 전시 중심이었던 운영 구조에 ‘유통’과 ‘확산’의 단계가 결합되며 예술 생태계를 공공 차원에서 지속 가능하게 구축하는 시도로 시작됐다. 이번에 문을 연 ‘공공갤러리’는 공공이 작품 발표와 공정한 거래 환경을 마련, 민간의 전문성과 인프라로 예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민관 협력형 미술 시장 모델이다.
황록주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팀장은 “일부 미술시장은 작품과 가격, 작가 경력 등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흘러 신뢰가 흔들리기 쉽다”며 “공공갤러리는 믿을 수 있는 유통 플랫폼을 만들고 관람자에게 접근성 낮은 예술 시장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자에게는 전시와 정당한 판매 기회를, 도민에겐 안전하게 예술을 향유하는 구조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개관 기획전 ‘다시, 집들이’는 2009~2021년 경기창작캠퍼스에 머물렀던 입주작가 20인을 초청해 신작을 포함한 103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한때 이곳에서 일상을 보내며 작업하던 작가들이 다시 ‘집의 주인’으로 돌아와 관람객을 맞는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과거 작업의 흔적, 이후 쌓인 시각적·사유적 변화들을 한 곳에 불러들이며 따뜻하게 서로의 안녕과 창작의 지속을 확인하는 자리다.
이번에 참여한 민정기 작가는 2009년 경기창작캠퍼스의 첫 입주 작가로, 오랫동안 후배 작가들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 그는 “대부도와 시화호를 마주한 자연환경 속에서 작업에 몰두한 경험은 창작자로서 풍부한 시각을 제공했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그램이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 작가는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당시 주류 이데올로기와 고급예술에 반해 정치, 사회적 비판의식과 한국적 정서를 결합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후 양평 서후리로 이전한 작가는 주변의 농촌 풍경을 회화에 담았다. 그는 최근 ‘서후리에서 벼베기’ 등을 통해 농촌 풍경을 현대 회화 언어로 펼쳐 보인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 세계 역시 다양하다. 김을은 ‘Beyond the Painting’에서 화면의 전통적 위계를 해체하고, 김재유는 선감도 일대 석산과 동식물 풍경을 담은 ‘여름날에’ 등을 선보인다. 민성홍은 산수화 형식을 빌려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단지를 볼펜·재봉틀로 표현해 도시 풍경의 아이러니한 층위를 드러냈으며, 신미경은 동서 고전 도상을 쉽게 녹는 비누 재료로 재현해 문화 번역의 간극과 시간의 유한성을 제시한다.
‘공공갤러리’는 약 120평 규모의 전시 공간에서 열린다. 지난 9월 공모를 통해 선정된 ▲메이준갤러리 ▲안다미로 갤러리 ▲아터테인 등 5명의 등록 갤러리스트는 유통을 맡는다. 작품 판매 수익은 작가와 갤러리스트가 지정 비율로 나누며, 갤러리스트 수수료 일부는 경기문화재단에 기부돼 향후 공익 프로그램으로 환원된다. 이와 함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예비 갤러리스트 양성 과정이 6차례 운영되며,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리모델링을 거쳐 2026년 하반기 재개관할 예정이다.
오는 22일에는 성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공갤러리 연계 교육 프로그램 ‘나의 컬렉터 발굴기’와 ‘Becoming a Gallery’ 워크숍이 진행된다.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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