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을 반으로 자르자, 노른자가 이상했다. 윤기가 돌아야 할 노란빛 대신, 푸르스름한 회색빛이 감돌았다. “이거… 상한 거 아냐?” 누구나 한 번쯤 놀라본 장면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상한 게 아니다. 이 ‘회색빛’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기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자료 사진
삶은 계란의 노른자가 회색이나 푸른빛으로 변하는 건 고온 장시간 가열로 인한 자연스러운 화학 반응이다. 이 현상을 ‘녹변(綠變)’이라고 부른다.
노른자 속의 철(Fe) 성분과 흰자 속의 황화수소(H₂S) 성분이 반응하면서 황화철(FeS) 이 만들어지는데, 바로 이 물질이 회색빛을 띠게 한다. 즉, 너무 오래 삶거나 뜨거운 상태로 방치했을 때 생기는 ‘조리 과잉’의 흔적이다.
이 변색을 막으려면, 삶는 시간은 10분 이내로, 그리고 삶은 직후 반드시 찬물에 담가 식혀야 한다. 잔열이 남으면 황화철 반응이 계속 일어나 색이 더 짙어진다.
“회색빛 계란은 상한 게 아니라, 과학의 색이다.”
계란찜을 만들다 보면 윗부분이 회색빛으로 변할 때가 있다. 이 역시 같은 원리다. 높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익혔기 때문이다.
계란찜 / OJKwon-Shutterstock.com
부드럽고 노란 계란찜을 원한다면, 약불로 천천히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뚝배기에서 가장자리가 익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남은 잔열로 마무리하면 색 변화도 줄고 식감도 훨씬 부드럽다.
신선한 계란은 색보다 모양과 표면 상태로 구분하는 것이 정확하다.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깨끗하고, 금이 없으며, 정상적인 타원형을 띠는 계란이 가장 신선하다.
최근에는 껍데기에 적힌 ‘난각번호’도 소비자들이 많이 참고한다. 이 번호는 산란일자와 생산자 고유번호, 그리고 닭의 사육환경 코드(1~4) 를 표시한 것이다.
1번: 방사 사육 (자연방목)
2번: 축사 내 방사
3번: 개선된 케이지
4번: 일반 케이지
하지만 번호가 높다고 ‘나쁜 계란’은 아니다. 사육 환경을 구분하기 위한 코드일 뿐, 품질이나 영양 성분을 뜻하지 않는다.
계란 삶기 / Karla Ferro-Shutterstock.com
축산물품질평가원은 “난각번호는 사육환경을 구분하는 정보이지, 계란의 영양이나 신선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아니다”라고 밝힌다.
1번 계란이라고 해서 무조건 더 건강한 것도 아니고, 4번 계란이라고 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닭의 스트레스나 생활 환경이 계란의 성분 차이를 만든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결국 신선도와 위생 관리가 더 중요하다.
정부는 계란 품질을 수치화한 등급판정 제도를 운영 중이다. 껍데기 청결도, 내부 신선도, 균열 여부 등을 평가해 1+, 1, 2등급으로 나눈다.
1+등급: 매우 깨끗하고 신선도 높은 계란 (호우유닛 72 이상)
1등급: 신선도 중상급 (호우유닛 60~72 미만)
2등급: 일반 수준 (호우유닛 40~60 미만)
계란 껍데기(난각) 산란일자 표시제도 / 뉴스1
등급판정을 받은 계란은 껍데기에 ‘판정’ 표시가 있으며, 포장지에 품질등급과 중량규격이 함께 적힌다. 축평원은 “균일한 품질과 신뢰도를 고려한다면 등급판정 계란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소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결국 삶은 계란 노른자가 회색빛으로 변하는 건 상하거나 오래된 탓이 아니다. 노른자 속 철과 흰자 속 황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과학의 흔적이다.
불 조절, 삶는 시간, 식히는 방식만 바꿔도 결과는 달라진다. 색이 변했다고 버리기보단, “아, 너무 완벽하게 삶았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삶은 계란의 회색빛 — 알고 보면 ‘과학의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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