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돌아온 연극 ‘트랩’이 오는 30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 ‘사고’를 원작으로 하는 블랙코미디 작품으로, 서울시극단의 올해 마지막 레퍼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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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자동차 사고로 작은 시골 마을에 머물게 된 트랍스가 은퇴한 판사의 집에서 ‘재판 놀이’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계속되는 추궁 속에서 트랍스는 점점 승진을 위해 상사 기각스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를 죽인 살인범이 되고 만다. 하수민 연출은 “양심은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인간으로 남으려는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마치 ‘배심원’처럼 모의재판을 지켜보는 위치에 놓인다. 객석이 일반적인 프로시니엄(정면무대) 형태가 아닌,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삼면 형태이기 때문이다. 고작 1m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 트랍스의 심리 변화와 표정, 숨결까지 포착할 수 있는 점이 큰 매력이다. “기각스의 부인과 사실은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요.” 트랍스는 본심을 털어놓는 순간 억눌러온 웃음을 터뜨리고, 미세한 감정의 변화는 눈앞의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까마귀 날개를 법관복 위에 달고 등장하는 집주인의 친구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전직 법조인과 사형 집행관이지만, 이제는 한 인간을 먹잇감처럼 둘러싸고 능글맞게 노려보는 포식자와 같다. 또 배우들은 실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자신들만의 ‘놀이’를 이어가는데, 와인 잔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무대의 요소로 활용돼 현장감을 높인다. 하 연출은 “원작 소설에는 노신사들이 입은 옷이 마치 까마귀 떼처럼 표현돼 있다”며 “그 부분을 이들만의 드레스 코드로 재밌게 표현해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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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랍스 역에 박건형이 새로 합류했다. 집주인 역의 남명렬, 전직 검사 초른 역의 강신구, 전직 변호사 쿰머 역의 김신기, 전직 사형집행관 필렛 역의 손성호는 같은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남명렬은 “초연 당시 관객들이 작품을 무척 좋아했고, 특히 마지막 반전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즐겁게 보다가도 엔딩에서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마음의 죄, 양심의 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깊게 남기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건형은 “서울시극단과의 첫 작업이라 설렌다”면서 “대선배들과 원캐스트로 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로 큰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의 제목과 배역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트랍스가 천천히 ‘덫’에 빠져드는 과정을 몰입감있게 그려낸다. 주인공 트랍스(Traps)는 ‘덫’을 뜻하며, 검사 초른은 ‘분노’, 변호사 쿰머는 ‘걱정’, 사형집행관 필레는 ‘덩어리’를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따왔다. 덫을 놓은 건 노신사들일까, 아니면 양심 앞에서 흔들린 트랍스 자신일까. 공연을 본 관객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하 연출은 “개인의 행복과 성공이 최우선이 된 지금, 도덕과 양심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지는 시대”라며 “그 가치를 외면하는 태도 자체가 결국 우리를 부도덕이라는 ‘함정(트랩)’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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