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점점 부드러워지고 아침 공기가 차가워질 때면, 시장 한쪽 편에는 큼직한 주황빛 덩어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주황빛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늙은호박'이다. 여름 내내 밭에서 햇살을 머금고 자란 늙은호박은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수확이 시작된다. 단단한 껍질 속에는 진한 주황빛 속살이 가득 차 있고, 오래 끓일수록 깊은 단맛이 우러나 따뜻한 국물 요리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의외로 이 시기에 늙은호박이 제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름이 지나면 한풀 꺾인 듯 보이지만, 사실 지금이 가장 달고 영양이 풍부한 때다. 예부터 농가에서는 겨울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늙은호박을 마루나 다락에 쌓아두었다. 찜, 죽, 범벅 등으로 만들어 먹으며 추운 계절 속에서 몸을 덥히는 음식으로 애용했다.
피로 해소부터 면역력 강화까지… 늙은호박의 효능
예로부터 늙은호박은 ‘몸의 기를 순하게 하는 음식’으로 불렸다. 지난 1596년대 본초강목(明 이시진 저) 조에는 달고 따뜻하며 기운이 약해진 몸을 든든하게 만드는 데에 쓰인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칼륨이 풍부해 체내 나트륨을 배출하고, 피로 해소와 붓기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섬유질이 많아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고 천천히 소화되기 때문에 포만감이 오래 유지된다.
또한 비타민A와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눈 건강과 피부 회복에 좋고, 비타민C도 다량 함유돼 있어 감기 예방과 노화 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늙은호박의 황색 색소 성분인 루테인과 제아잔틴은 눈의 피로를 줄여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이 자주 사용하는 사람에게 좋다.
달콤하고 단단한 '늙은호박', 이렇게 고르면 실패 없다
이렇게 몸에 좋은 늙은호박을 고르려면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먼저 겉껍질을 살펴야 한다. 표면이 단단하고 손톱으로 눌러도 쉽게 들어가지 않으며, 색이 고르게 퍼진 것이 좋다. 껍질이 거칠고 울퉁불퉁한 것은 수분이 빠지고 당이 많다는 신호다. 반대로 껍질이 지나치게 반들거리거나 부드럽다면 덜 익은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꼭지 부분도 중요한 기준이다. 꼭지가 단단히 붙어 있고 말라 있는 것이 신선하다. 꼭지 주변이 검게 변했거나 물렁물렁하면 이미 내부 수분이 빠져나온 상태일 수 있다. 또한 속이 비어 있으면 이미 내부가 무르기 시작한 상태이기 때문에 손에 쥐었을 때 단단한 느낌이 나는 호박을 고르는 게 좋다.
자른 늙은호박을 고를 때는 단면 색과 씨앗 상태를 보면 된다. 속살이 진한 주황색이고 씨앗이 통통하게 여물어 있으면 완전히 익은 상태다. 반면에 단면이 연하거나 씨앗이 흐물흐물하면 덜 숙성된 것이다.
늙은호박 보관의 핵심
늙은호박은 보관 방법에 따라 신선도가 크게 달라진다. 통째로 둘 경우 통풍이 잘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게 좋다. 너무 습하면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므로 신문지나 종이상자 위에 올려 바닥과 닿지 않도록 받침을 두는 게 안전하다. 이렇게 보관하면 두세 달까지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미 자른 늙은호박은 조금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주일 이내에 먹을 때에는 먼저 씨앗을 제거하고 물기를 닦은 뒤 랩으로 감싸 냉장고에 보관하면 3~5일 정도 신선함을 유지한다. 장기간 두고 먹을 계획이라면 조각으로 썰어 냉동하는 것이 좋으며, 한 번에 사용할 만큼씩 소분해 지퍼백에 담으면 꺼내 쓰기 편리하다.
해동할 때는 실온에서 자연 해동하거나 전자레인지로 1~2분 정도 가볍게 데우면 된다. 끓이거나 찌는 요리에 넣을 때는 그대로 넣어도 무방하다. 냉동 과정에서 수분이 줄어들면서 당도가 약간 올라가 해동 후에는 오히려 단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집에서 즐기는 늙은호박 요리
늙은호박은 조리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대표 요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호박죽'이다. 먼저 껍질을 벗겨 찐 뒤 곱게 으깨 쌀가루를 넣고 끓이면, 호박의 단맛이 은은하게 퍼진다. 호박죽은 위에 부담이 적고 속을 따뜻하게 해줘 아침 식사나 야식으로도 잘 어울린다.
호박과 팥, 찹쌀을 함께 끓인 '호박범벅'은 겨울철 별미다. 삶은 팥에 으깬 늙은호박과 불린 찹쌀을 넣고 끓이면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살아난다. 달지 않게 만들면 반찬으로 먹을 수 있고, 꿀이나 조청을 넣으면 간식으로 즐길 수 있다.
늙은호박은 '전'으로도 자주 쓰인다. 얇게 썰어 부침가루와 달걀을 입혀 구우면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아이 반찬으로도 인기가 많다.
단 늙은호박을 조리할 때는 껍질이 매우 단단하므로 반드시 단단한 칼을 사용해야 한다. 전자레인지에 2~3분 정도 가볍게 데운 뒤 자르면 손쉽게 썰 수 있다. 또한 껍질에도 영양이 많기 때문에 깨끗이 씻어 일부는 껍질째 사용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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