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관 초대 원장을 다시 세운 동상, 반세기 표준의 기억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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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 초대 원장을 다시 세운 동상, 반세기 표준의 기억을 깨우다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1-08 09:02: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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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초대 표준연 소장을 지낸 고(故) 김재관 박사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김 박사의 배우자 양혜숙(왼쪽 셋째)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과 아들 김원준(맨 오른쪽) 삼성글로벌리서치 대표가 흉상에 손을 얹고 있다.
6일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초대 표준연 소장을 지낸 고(故) 김재관 박사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김 박사의 배우자 양혜숙(왼쪽 셋째)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과 아들 김원준(맨 오른쪽) 삼성글로벌리서치 대표가 흉상에 손을 얹고 있다.

 6일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하 표준연) 창립 50주년 기념식.

 흉상(동상) 제막 직전, 첫 목소리는 과학자의 아내에서 시작됐다. 고(故) 김재관 초대 원장의 배우자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은 “그 시절 남편은 정말 온통 나라를 위해서만 일했다”고 회고했다. 1970년대, 남편이 3개월 가까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던 밤들.

 “이럴려고 결혼했나” 싶을 무렵, 박정희 대통령이 “남편들이 호텔에서 밤을 새우는 건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며 차관보 아내들을 불러 달랬다는 일화도 덧붙였다. 그 치열한 밤들이 모여 ‘한국경제개발계획 4차 5개년 계획’을 밀어 올렸던 시간이었다.

 “연구는 헌신이자 애국이었다”

김재관 박사는 대한민국 ‘제1호 유치과학자’로 귀국해 포항제철(현 포스코) 건립과 자동차 산업 육성의 밑그림을 그렸다. 상공부 중공업차관보를 거쳐 1975년 12월 표준연(당시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에 취임한 뒤엔 부지 선정, 인재 영입, 기자재 확충까지 운영 전반을 직접 챙겼다. ‘표준’이 낯설던 시절, 온도·길이·전파 등 기초 물리량의 측정 전문가들을 세계에서 모아 체계를 세우고, 국가 표준시간과 시각 확립에도 앞장섰다. 1975~1980년 초대 소장 재임 동안 다진 이 토대는 산업과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었고, 1980년 개정 헌법 제127조 2항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는 문장으로 명문화되었다. 훗날 1999년 제정된 ‘국가표준기본법’의 씨앗이기도 했다.

동상 앞에서 다시 맞는 초심

 이날 표준연은 김재관 박사의 흉상 제막식과 함께 창립 50주년을 기념했다. 제막식엔 역대 원장들(제4대 이충희, 5대 박승덕, 8대 이세경, 10대 김명수, 11대 강대임, 12대 신용현, 13대 권동일, 14대 박상열, 15대 박현민)이 총집결해 반세기의 사연을 증언했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김영식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최성아 대전시 정무경제과학부시장, 김명자 KAIST 이사장, 이광형 KAIST 총장 등 산·학·연·관 인사들도 자리해 “정확히 측정하지 못하면 제대로 만들 수 없고,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세계와 경쟁할 수 없다”는 표준의 명제를 다시 확인했다.

구 차관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바이오·의료까지 한국 산업 전반의 품질이 세계적 신뢰를 얻은 데는 표준과 측정의 집요한 축적이 있었다”며 “이는 한 사람의 성과가 아니라 연구자들이 밤낮없이 실험실 불을 밝히며 쌓아온 노력의 총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AI가 측정을 자동화하고 양자 기술이 물리량 정의 방식을 바꾸는 지금, 우리는 다시 도전의 출발선에 서 있다”며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자율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국제무대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표준연의 길’, 동상이 된 질문

동상은 과거를 기리는 상징물이지만, 김재관 박사의 흉상은 질문을 던지는 장치에 가깝다. 왜 한 과학자는 독일 제철회사에서의 안정된 자리를 뒤로한 채, 귀국이라는 불확실성을 택했을까. 왜 초대 소장은 ‘표준’이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부지에서 기자재까지 손수 챙겼을까.

 그 답은 양혜숙 이사장의 소박한 소회 속에 있다. “90세가 되어 돌아보니 표준연이 있었기에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말은, ‘표준’이 산업의 품질을 매기는 잣대를 넘어, 사회가 신뢰를 쌓는 방식 그 자체였음을 일깨운다.

 산업강국의 역설: 보이지 않는 것을 정확히 만드는 일

표준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일이다. 오차를 줄이고 재현성을 높이는 작업은 즉각적인 성과로 보이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보이지 않음’이 산업강국을 가능하게 한다. 0.000…의 자리까지 정확히 맞춘 시간과 길이, 온도의 체계가 있어야 반도체가 작동하고, 자동차가 안전하며, 조선과 바이오가 세계와 거래된다. 김재관 박사가 세운 표준의 틀은 ‘보이는 성과’ 이전에 반드시 필요한 ‘보이지 않는 기반’이었다.

제막식이 끝나고 흉상 앞에 헌화가 이어졌다. 양혜숙 이사장은 “오늘 많은 분들이 남편을 기리고 흉상도 세워주니 감격스럽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재관 박사가 시작한 ‘표준연의 길’은 이제 후배 과학자들의 실험대 위에서 다시 써지고 있다. 반세기를 넘어선 오늘, 동상은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질문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전히 단순하다. “정확히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정확히 측정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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