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의 0시 즈음] 고요한 설국 위에 남은 이야기, ‘여행과 나날’의 감정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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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섭의 0시 즈음] 고요한 설국 위에 남은 이야기, ‘여행과 나날’의 감정과 시간

뉴스컬처 2025-11-08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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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미야케 쇼의 신작 '여행과 나날'은 일본 현대영화의 흐름 속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정조를 지닌다. 미야케 감독은 늘 '시간의 감각'과 '인물의 침묵'에 주목해왔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 태도는 더 이상 미학적 장식이 아니라 존재론적 탐구로 확장된다. 영화는 일종의 내면 풍경화처럼, 인간의 고독과 회복의 리듬을 시각적으로 기록한다.

영화 '여행과 나날' 포스터. 사진=엣나인필름
영화 '여행과 나날' 포스터. 사진=엣나인필름

영화의 출발점은 각본가 '이(李)'라는 인물의 슬럼프다. 그러나 미야케는 슬럼프를 창작의 문제로 좁히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의 붕괴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인간의 '감각'을 탐색한다. 언어의 부재 속에서 삶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일본 근대문학과 영화의 전통 속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츠게 요시하루의 만화가 보여주는 ‘내면적 유랑’이나, 오즈 야스지로의 정지된 프레임이 품은 여백의 미학은 미야케 쇼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미야케는 이 전통을 단순히 계승하지 않는다. 그는 느림을 ‘지각의 윤리’로 끌어올린다.

'여행과 나날'의 시각적 구도는 한편의 정지화에 가깝다.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인물이 이동할 때조차 화면은 그를 기다린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의 시간보다 감정의 시간을 체험하게 만든다. 눈이 내리는 장면, 차가운 바람의 소리, 여관의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의 흔들림 등은 서사의 기능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의 물리학’을 형성한다.

미야케의 연출은 하마구치 류스케와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마구치가 “차갑고 차가운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몸의 깊은 곳이 따뜻해진다”고 표현한 것은 단순한 찬사가 아니라 분석적 통찰이다. 두 감독은 모두 현실의 표면보다 감정의 미세한 입자를 추적한다. 그러나 하마구치가 언어를 통해 감정의 균열을 탐색한다면, 미야케는 침묵을 통해 그것을 형상화한다.

사운드 디자인은 특히 인상적이다. 음악은 절제되어 있고, 대사도 드물다. 대신 발소리, 컵이 닿는 소리, 눈이 녹는 소리가 정서적 리듬을 주도한다. 이러한 음향의 미세한 조직은 로베르 브레송의 사운드 미학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미야케의 음향은 더 따뜻하다. 그는 무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온기를 남긴다.

심은경의 연기는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심은경은대사보다는 정지된 표정과 시선으로 인물의 심리를 구현한다. 그 절제된 표현은 영화의 주제와도 일치한다. '이'는 말할 수 없기에 쓰기를 멈춘 인물이다. 그러나 바로 멈춤 속에서 영화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한다. 심은경의 연기는 ‘새로운 언어’의 첫 음절처럼 작동한다.

영화의 공간 구성 또한 의미심장하다. 설국의 여관은 배경이 아니라 상징적 내면 공간이다. 지도에도 없는 그 장소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세계, 혹은 예술적 감각의 근원지로 작용한다. 인물이 현실의 언어를 잃고 이 여관에 머물 때, 비로소 ‘감각의 언어’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공간은 정신분석적 의미의 ‘무의식의 장소’로 읽히기도 한다.

美 매거진 Variety가 평한 대로, 영화는 “삶을 바꾸고, 때로는 구원까지 이끌어내는 힘”을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서사의 결말로서의 구원이 아니다. 미야케 쇼에게 구원은 ‘관찰’의 행위에 있다. 존재를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여행과 나날'의 내러티브 구조는 명확한 전환점 없이 흐른다. 이러한 비선형성은 감정의 리듬을 따라가는 미야케의 방식이다. 서사의 곡선을 거부한 채, 시간의 결을 따라 나아가는 영화는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다. 미야케는 관객을 이야기의 소비자가 아닌 공동 저자로 위치시킨다.

'여행과 나날'은 일본 현대 영화가 추구하는 ‘정서적 리얼리즘’의 새로운 장을 연다. 미야케는 감정의 사실성을 과잉 표현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정서의 흔적을 남긴다. 인물의 시선, 눈의 낙하, 방 안의 정적 등이 모여 하나의 감정 구조를 이룬다. 이는 미학적으로 ‘감정의 구조화된 잔상(emotional residue)’이라 부를 만하다.

심은경의 연기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심은경은 언어 이전의 표현, 즉 몸의 리듬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이는 스즈키 세이준이나 기타노 다케시의 물리적 연기와 달리, 감정의 내면적 진동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미야케가 인간을 ‘이야기하는 존재’가 아니라 ‘느끼는 존재’로 재규정하는 순간, 심은경의 몸짓은 영화의 철학이 된다.

영화 말미 두 인물은 폭설 속을 걷는다. 어떤 대사도, 음악도 없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서 관객은 분명히 변화를 감지한다. 그것은 극적 결말이 아니라, 인식의 변환이다. 현실은 그대로이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영화는 완결된다.

영화 '여행과 나날' 포스터. 사진=엣나인필름
영화 '여행과 나날' 포스터. 사진=엣나인필름

'여행과 나날'은 결국 ‘관조의 영화’다. 삶을 치유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시간의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미야케 쇼는 인간의 고독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독을 세계와 화해시키는 길을 보여준다.

작품은 일본 영화의 한 경향, 즉 '고요의 미학'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차가운 이미지 속에 따뜻함을, 침묵 속에 언어를, 여백 속에 감정을 발견하는 영화. 그 미세한 진동이 바로 미야케 쇼의 영화적 신념이다.

'여행과 나날'은 삶의 서사와 감정의 리듬을 분리하지 않고, 그 두 층위를 하나의 ‘지각적 경험’으로 엮어내는 방식에서 미야케의 영화적 성숙이 드러난다. 고요 속에서 세계를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영화는, 시간의 흐름이 곧 인간의 회복임을 증명한다.

영화는 결국 하얀 눈과 함께, 잠시 멈춰 서 있는 시간을 건넬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야말로, 인생에 필요한 시간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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