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의 북토피아]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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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북토피아]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뉴스컬처 2025-11-07 19:19: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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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본다.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독일인들은 “만약 히틀러가 집권하지 않았다면 독일의 운명은 달라졌을까”를 떠올리고, 한국인이라면 “흥선대원군이 쇄국 대신 개방을 택했다면, 혹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자주적 근대화를 이뤘다면 우리는 식민의 굴레를 피할 수 있었을까”를 묻는다.

하지만 이 모든 ‘만약’은 결국 허망한 상상에 불과하다. 설사 다른 길을 택했다 해도 또 다른 역사의 질곡이 펼쳐졌을지 모른다.

현대 영미문학의 거장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필립 로스(Philip Roth)의 『미국을 노린 음모』는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소설은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찰스 린드버그(1902~1974)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꺾고 대통령이 되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린드버그는 실존 인물이다. 1927년, 단독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세계 최초의 조종사. ‘세인트루이스의 혼(The Spirit of St. Louis)’을 타고 뉴욕을 떠나 33시간 30분 만에 파리에 착륙한 그를 향해 10만 인파가 환호했고, 그는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타임지가 선정한 첫 ‘올해의 인물’, 명예훈장 수훈자, 항공기술 발전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히틀러와 나치를 두둔하고, 참전을 반대하며, 우생학에 바탕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나치는 그에게 제국훈장을 수여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그를 비판했다. 결국 그는 군을 떠나며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로스의 소설은 그 이후, 린드버그가 194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루스벨트를 꺾는다는 가상의 역사를 이어간다.

“린드버그가 아니면 전쟁에 투표하세요(Vote for Lindbergh, or vote for war)”라는 구호 아래 그는 남부와 중서부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승리한다.

그리고 취임 후 첫 행보로 나치 독일과 평화조약을 맺고,독일의 유럽 확장에 미국은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 대가로, 유대인들에 대한 폭력이 미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다.

비유대인들의 자경단이 거리에서 유대인을 즉결 처형하고, 언론은 침묵한다.

한 언론인은 린드버그 정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권리장전이 휴짓조각이 되었고, 인종혐오에 물든 자들이 국가를 운영한다. 미국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반역을 저지르고 있다.”

'미국을 노린 음모'는 픽션이지만, 읽다 보면 마치 오늘의 뉴스 같다. 작가가 미래를 예견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바라보면 린드버그 정권의 음모가 소설 밖 현실로 옮겨진 듯하다.

필립 로스는 실제로 “1930~40년대 공화당 내 일부 급진파 의원들이 린드버그의 출마를 원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이며,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의 정신 위에 세워진다. 국민이 합법적으로 선출한 지도자라 해도 언제든 선동가나 독재자로 변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트럼프라는 이름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되풀이된다.

그래서 ‘만약의 역사’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깨어 있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뉴스컬처 최병일 newsculture@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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