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직접 '한국투자 벨기에 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2호'(이하 벨기에펀드) 배상 과정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가운데 우리은행만 유독 늑장 대응으로 일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펀드 판매사인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이 이미 대부분의 배상을 신속하게 마무리 중인 반면 우리은행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인 탓이다. 우리은행에서 펀드 상품에 가입한 가입자들은 "동일한 펀드를 가입했음에도 우리만 고통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KB·한투는 거의 끝냈는데 우리만 하세월"…충성고객 울리는 우리은행 늑장 대응 논란
우리은행에서 벨기에펀드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은행은 불완전 판매 의혹이 끊이지 않는 벨기에펀드의 전액 손실 사태와 관련해, 배상 절차를 전혀 밟고 있지 않다. 다른 펀드 판매사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펀드 가입자들은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우리은행 본사에서 임직원들과 배상안 협의 절차를 진행했지만 당시 임직원들은 "기다려달라" "검토 중이다" 등의 말만 반복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가입자 A씨는 "우리은행 임직원 5~6명과 함께 논의했지만 대부분 구체적인 상황 설명 없이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며 "향후 배상안이 설계되면 가입자들에게 통보하고 만약 회사와 고객들 간의 조율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시 조율이 완료될 때까지 계속 논의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후론 또 감감 무소식이다"고 성토했다.
일부 임직원들이 가입자들에게 불완전판매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소송 가능성을 언급하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나왔다. 또 다른 회의 참석자 B씨는 "한 직원이 불완전판매 정황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입자가 직접 증빙을 내야하고 100% 배상이나 계약 무효를 원하면 부득이하게 소송 절차를 거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며 "그러면서 소송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개인이 승소하기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는 등 협박하는 듯한 언행도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가입자 C씨는 "5000만원 상당의 종잣돈을 벨기에펀드에 넣었는데 당시 펀드 상품 판매를 담당하던 직원이 '사모님 엄청 좋은 상품이 나와 추천드려요'라는 전화에 가입하게 됐다"며 "가입 당시 해당 직원은 후순위, 임대율 등 중요한 내용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고 손실이 확정된 후 물어보니 본인도 몰랐다고 일축했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장 "벨기에펀드 설계·판매 철저히 확인"…소비자단체 "시간끌기는 포기 유도 수법"
벨기에 부동산펀드는 벨기에 브뤼셀 소재 투아송도르 빌딩의 장기 임차권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한국투자증권 자회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2019년 6월 설계했다. 판매사는 우리은행과 한국투자증권, KB국민은행 등이다. 코로나19와 유럽 금리 인하 등으로 해당 건물 가치가 급락하면서 선순위 대출 만기 도래 후에도 대출금 상환이 불가능해졌다. 기한이익상실(EOD) 사태로 인해 선순위 대출 기관인 영국 생명보험사 로쎄이가 2100억원에 매입한 건물을 900억원 수준으로 매각하면서 후순위 투자자인 개인 투자자들은 전액 손실이 확정됐다.
가입자들은 판매 과정에서 투자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불완전판매를 문제 삼았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은 일부 불완전판매를 인정하고 지난 6월부터 자체 배상 절차를 시작해 약 70%의 배상을 완료했다. KB국민은행도 불완전판매 여부를 조사하고 은행과 투자자 과실을 고려해 원금의 40~80% 수준의 자율배상을 진행하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8월 초부터 선제적으로 보상 절차를 진행해 현재 펀드 좌수 기준 가입자 78%의 자율배상을 완료했다"며 "투자위험등급을 잘못 표기해 자신의 투자성향과 맞지 않게 가입한 투자자에게는 100%를 배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전액 손실을 낸 벨기에 부동산펀드와 관련해 판매사들의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현장검사에 이미 착수했다. 손실이 발생한 해외부동산 펀드에 대한 판매 과정 조사는 이찬진 금감원장 부임 이후 처음이다. 이달에는 이 원장이 직접 나서 벨기에펀드와 관련해 상품 설계와 판매 단계 전반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이 원장은 "현장검사 결과를 토대로 불완전판매 관련 내부통제 위반 시 이미 처리된 분쟁민원을 포함해 모든 분쟁민원의 배상 기준을 재조정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우리은행을 둘러싼 벨기에펀드 늑장 대응 논란의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시선이 많다. 금융당국의 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와 배치된다는 점에서 일벌백계의 시범케이스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그룹 금융소비자보호 협의회'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그룹 최우선 가치로 삼을 것을 강조하고 금융소비자 거버넌스 강화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과 보험상품 불완전판매 근절 등을 실행방안으로 논의하는 등의 행보에 대한 진정성 훼손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불완전판매가 의심되는 동일 상품을 판매했음에도 다른 판매사들이 70% 이상의 배상을 진행할 때 우리은행이 단 한 차례도 배상을 하지 않은 것은 타 기업에 비해 소비자 보호 마인드가 크게 부족함을 보여주는 사례다"며 "통상적으로 제대로 배상을 해주지 않고 '논의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며 차일피일 미루거나 법적절차 운운하는 방식은 가입자들이 스스로 지치거나 겁을 먹고 포기하도록 만드는 수법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사안과 관련, 우리은행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의 경우 판매 과정에서 위험등급을 오표시한 부분이 있어 상대적으로 배상 절차가 빨리 진행이 됐다"며 "우리은행은 연내 배상 여부와 기준을 마련해 앞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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