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원자력잠수함(원잠) 건조 방안을 두고 미국 대신 국내에서 건조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6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에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시설 투자를 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위 실장은 이어 "미국 조선업체인 제너럴 다이내믹스에 건조를 맡기는 방안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며 "우리의 수요에 맞고, 비용 대비 효율성 높은 원자력잠수함을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최근 한미 간 잠수함 협력 논의 속에서 한국이 독자 노선을 더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원잠 기술 일부를 도입해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막대한 비용과 기술 제한이 발목을 잡았다. 위 실장은 "우리가 염두에 두는 원잠은 버지니아급 같은 대형 핵잠이 아니라, 한국 해역과 작전 환경에 맞춘 중형급을 목표로 한다"며 "우리 실정에 맞추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단순히 건조지를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앞으로 조선·방위 산업의 판을 흔들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원자력잠수함 건조엔 고밀폐 수조 설비부터 원자로 모듈, 핵연료 공급, 수중 음향 시험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도 이번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대형 조선소들은 이미 도산안창호급 등 디젤잠수함 건조 경험을 갖고 있어, 원잠 건조를 위한 인프라 전환이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한 방산 관계자는 "원잠 건조는 단순한 선박을 넘어 국가 기술과 전략 자립도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이번 정부의 선택은 우리 기술력에 대한 신뢰이자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원잠 건조는 선박뿐 아니라 소재, 전자, 원자력, AI 제어 등 여러 분야의 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국가 산업 생태계 전체의 '퀀텀 점프'를 이끌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건조 방침은 산업적 선택을 넘어, 앞으로 외교·안보 전략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아래 군사용 원자력 추진체 확보를 위해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수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한미 간 기술이전, 핵연료 공급, 운용 통제 등 구체적 협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 내에선 "미국과의 협력은 유지하되 주도권은 우리가 쥐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분명해지고 있다. 위 실장 역시 "미국과 협력은 계속하겠지만, 우리가 주도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주국방'과 '기술주권'이라는 두 축을 모두 겨냥한 전략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한국형 원잠 추진에는 세 가지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기술 확보다. 원자로 모듈과 냉각 시스템, 소음 저감 설비 같은 핵심 기술을 국내 개발하거나, 필요하면 동맹국과 협력해 갖춰야 한다. 둘째, 국제 규제 대응이다. 원잠에는 핵연료 사용이 불가피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기 위해 절차와 감시 체계를 투명하게 갖춰야 한다. 셋째, 산업 생태계 조성이다. 원잠 건조는 수많은 전문 업체가 협력하는 대형 프로젝트여서, 정부 차원의 인프라 전환과 인력 양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위성락 실장의 발언에는 "우리 바다는 스스로 지킨다"는 자주 의지가 담겼다. 이는 단순한 조선 사업을 넘어 한국형 방위산업의 자립 선언으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향후 10년간 한국 조선과 방산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방 전문가들은 이제 한국도 기술 도입국에서 기술 주도국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원잠 프로젝트가 그 상징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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