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3심에 걸쳐 일관되게 ‘경제적 피해가 있더라도 사적 제재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피해자에 대한 형사 책임을 다투는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적 복수를 시도한 행위는 사법권의 행사와 판단을 무시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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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살인미수와 법정소동 혐의로 기소된 강모(51)씨 상고심에서 피고인 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강씨는 지난해 8월 28일 서울남부지법 법정에서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업체 하루인베스트 대표 이모씨를 과도로 습격한 혐의로 기소됐다.
강씨는 2017년부터 가상자산 투자를 하던 중 2021년 이씨가 운영하는 하루인베스트에 코인을 예치했다. 하루인베스트는 ‘가상자산 예치 시 무위험 운용을 통해 원금을 보장하고 업계 최고 수익을 지급하겠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이씨는 2023년 6월 예치된 가상자산에 출금 정지 조치를 내리고 사무실을 폐쇄했다. 강씨를 비롯해 1만6000여명으로부터 약 1조4000억원의 코인을 예치받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이씨는 지난 6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강씨는 이씨의 재판을 방청하던 중 증인신문을 받고 있던 무방비 상태의 이씨에게 다가가 미리 준비한 과도로 목 부위를 5회 연속 내리찍었다. 이씨는 우측 목 부분 3곳에 깊이 2㎝, 5.5㎝, 1.5㎝, 길이 3.5㎝, 2㎝, 5.5㎝의 열상을 입었으나 신속한 치료로 사망에는 이르지 않았다.
1심은 강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압수된 과도 1자루와 3M 반코팅 면장갑 1개를 몰수했다.
강씨는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기각했다.
강씨 측은 “상해의 고의만 있었을 뿐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며 “설령 살인 고의가 인정되더라도 스스로 범행을 중지한 중지미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살인 고의를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에 사용한 과도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거나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흉기”라며 “피해자의 머리를 왼쪽으로 젖혀 목이 드러나게 한 뒤 과도를 5회 연속 내려찍는 방법으로 목 부위를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목을 칼로 수회 찌를 경우 생명에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견할 수 있다”며 “정신감정서에는 ‘사기꾼이 죽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범죄를 계획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어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지미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목격한 사람들이 주의를 집중하고 법정경위가 제압하려 다가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에 범행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는 범죄 완수에 장애가 되는 사정이지 자의로 행위를 중지한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미수에 그쳤다 하더라도 중한 형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공개된 법정에서 재판 진행 중에 이뤄진 범행으로 법원의 재판 기능을 저해하고 공적 공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야기한 행위”라며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 때문에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형사 책임을 다투는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며 “설령 피해자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이러한 사적 제재는 결코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강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수긍하고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살인의 고의, 중지미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강씨 측이 제기한 양형부당 주장에 대해서는 법리적 한계를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에 의하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만 양형부당을 사유로 한 상고가 허용된다”며 “피고인에 대해 그보다 가벼운 형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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