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 조선·해운 산업을 겨냥해 이어오던 징벌적 조치를 1년 동안 유예하기로 하면서 양국 간 '조선 패권 전쟁'도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이번 결정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에서 조선·물류 분야 갈등 완화에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6일(현지시간), 연방관보를 통해 이런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앞서 USTR은 지난해부터 중국 정부가 자국 조선업을 국가 보조금과 덤핑 지원으로 키워 글로벌 시장의 공정 경쟁을 훼손한다고 보고, '무역법 301조'에 따라 전면 조사를 진행해 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10월 14일부터 미국 항만에 입항하는 중국산 선박, 그리고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에 대해 '입항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외국 조선소에서 만든 자동차 운반선에도 같은 규제가 적용됐다.
또한 미국은 물류 핵심 장비인 중국산 STS 크레인 등 일부 항만 장비에 100%의 추가 관세까지 매기며, 사실상 중국 조선·항만 장비 산업 전반을 압박해왔다.
이 조치는 중국 조선사들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한국과 일본 등 비(非)중국 조선업체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갈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특히 LNG 운반선, 초대형 원유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국내 조선 3사의 수주 기회가 한층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중국은 즉각 반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가 미국의 301조 조사에 대응해 '미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한 보복'을 명목으로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 5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로 인해 양국 간 조선·물류 갈등이 빠르게 고조됐지만, 최근 미중 정상의 합의로 '상호 조치 중단'이 이뤄지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10월 30일 회담에서 양국의 조선·해운 관련 제재를 일시적으로 멈추기로 한 것이다.
USTR은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중국 관련 입항수수료 부과와 장비 관세 조치를 이번 달 10일부터 내년 11월 9일까지 1년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에는 미국 항만에 들어오는 중국 선박과 장비에 대해 수수료나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USTR은 또 "이번 조치는 단순한 유예가 아니라, 무역법 301조에 따른 중국과의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조정"이라며, "미국은 앞으로도 국내 조선업의 재건과 동맹국들과의 협력 강화를 지속하겠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중 간 조선 제재가 완화되면 당장 물류비 부담이 줄고, 발주 시장의 불확실성도 덜어질 것"이라면서 "다만 유예 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피하려고 자국 내 발주 비중을 늘릴 수도 있어 경쟁 구조는 여전히 치열할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잠시 휴전하는 데 가까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번 상황을 계기로 국내 조선업계는 가격 경쟁보다는 기술력 중심의 경쟁력을 키울 필요성이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주요 조선 3사는 최근 AI 기반 선박 설계, 친환경 연료 기술, 자율운항 선박 개발 등 미래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아직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일시적 제재 유예만으로 시장 판도가 크게 바뀌진 않는다며 한국으로서는 LNG, 암모니아 추진선 등 미래 선박 분야에서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결정은 미중이 첨단 산업, 반도체, 에너지와 함께 조선산업도 외교 협상 카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내에서도 항만 물류비 상승, 해운사의 부담 증가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점도 유예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업계는 이번 '1년 유예'가 새로운 국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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