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안착하면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참여 저변이 넓어지고, 관련 산업과 지역 경제에도 상당한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아직 재정·인프라·제도 보완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승강제가 한국 체육의 체질 개선과 새판짜기에 있어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데일리는 한국형 승강제가 나아갈 길을 4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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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형 스포츠 승강제 디비전시스템이 제도 실험을 넘어, 한국 스포츠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승강제는 ‘경기력에 따라 팀이 상·하위 리그로 오르내리는 제도’다. 승격과 강등, 그 냉정한 질서 속에는 구단과 선수의 진심 어린 땀과 노력이 녹아있다. 지역과 팬들이 함께 손을 잡고 공정한 경쟁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 생태계를 완성해나간다는 것이 쉽지않은 도전이지만, 변화의 흐름은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승강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단순히 외국 모델을 답습하기보다 우리 현실에 맞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종목 구성원과 팬들이 조화롭게 맞물릴 때 진정한 ‘한국형 승강제’가 완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승강제의 성공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분석, 팬들의 바람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지도자 관리체계 현실화를”
주형철 한국스포츠과학원 공동연구원(스포츠산업학 박사)
한국 체육계에 승강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다만 구성원들이 승강제에 참여해 얻는 가치의 편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 가치가 채워지지 않으면 결국 허울뿐인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승강제는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선수들이 상위 리그로 승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동기 부여가 돼야 한다.
승강제를 통해 확실하게 얻는 것이 있도록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지도자 관리 체계도 현실화해야 한다. 승강제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지도자 시스템에 대한 확실한 뿌리가 필요하다. 이름이 잘 알려진 유명 선수 출신들이 승강제 리그의 지도자로 적극 나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탄탄한 하부리그 구축을”
차상엽 JTBC 축구 해설위원
승강제는 상위리그 팀들에게 긴장감을, 하위리그 팀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선행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다. 세미프로에서 프로로 승격할 경우, 아마추어에서 세미프로로 올라갈 경우 선수의 신분·계약서 등은 물론, 홈구장 시설도 상위 리그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또한 국내 리그의 특성상 기업구단이 존재한다. 이들이 3, 4부리그 등으로 강등될 경우 해체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점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현행 5~7부리그는 권역별로 싱글 또는 더블라운드로 진행한다. 한 곳에서 일괄적으로 경기를 치르는 방식이다. 연고지는 있지만, 홈경기장은 없다. 잉글랜드는 4부, 독일은 3부까지를 프로 범주에 포함한다. 하부리그 선수들은 전원 프로 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없다. K리그도 전면 승강제를 실시할 경우 어디까지 프로로 할 것인지 중요하다. 프로팀들이 보유한 리저브팀의 경우 몇 부까지 승격이 가능하도록 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잉글랜드는 연령대별 리그를 독자 운영한다. 독일은 프로 산하 리저브팀이 3부리그까지 승격할 수 있다. 하부리그가 제대로 자리잡기까지 승강팀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등 완충장치를 마련한다면 초기 난관을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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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인력 처우 개선해야”
나진균 서울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
현장에서 실제로 승강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 제도를 안착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낀다. 일단 늘어나는 경기를 소화할 만한 시설이 없다. 야구만 하더라도 D1부터 D6까지 서울에서만 수백회 열리는데 경기를 열 수 있는 야구장은 겨우 4곳(목동, 신월, 구의, 난지) 뿐이다. 하다 못해 한강 고수부지 야구장을 사용하려고 해도 행정적 제약으로 막혀 있다. 구청 등에서 운영하는 야구장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어렵다.
서울에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니 지방까지 내려가 경기를 해야 한다. 동호인들이 감당하기에 비용이나 시간이 만만치 않다. 경기를 할 곳이 없다보니 경기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팀과 선수 입장에선 승강제에 참여할 유인이 없다. 예산이나 인력 운영에 대한 제약도 너무 많다. 현재 승강제 운영·관리 인력은 1년 단위로 계약직만 채용한다. 처우가 불안하니 좋은 인력을 뽑기 힘들고, 업무의 연속성도 가져갈 수 없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참여자 책임감이 성공열쇠”
오영길 OK저축은행 읏맨 럭비단 감독
아무리 좋은 제도나 시스템을 갖다 놓아도 결국 그것에 참여하고 운영하는 구성원의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국형 승강제도 마찬가지다. 유럽, 일본 등에서 승강제가 안착한 것은 리그에 참가하는 선수 및 관계자들의 경험과 희생이 오랫동안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서 럭비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모든 럭비인들이 승강제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럭비를 더 알리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가치를 럭비인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좋은 제도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은 각 종목 스포츠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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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유소년 등 품어야”
정현 한국체육대 강사(스포츠사회학 박사)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사업으로 승강제를 운영하는 11개 종목 단체가 더 활성화하려면 서로 연결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가 필요하다. 현재 승강제 포맷은 성인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여성, 유소년, 노인의 접근이 어렵다.
승강제가 지속적으로 발전·유지되려면 체육 활동에서 소외된 대상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여성, 유소년에 더 많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굳이 1부와 5부 리그를 붙일 필요는 없다. 성인 남성들이 참여하는 대회들은 비교적 잘 운영되는 편이다. 체육 활동의 저변을 넓히고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체육 활동에서 소외된 계층을 중심으로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
◇“승자 독식구조 해소해야”
강민욱 국민대 교수(스포츠사회학 박사)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승강제는 서로 독립돼있는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목소리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승강제는 여전히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문체부 지원도 재정 자립도가 튼튼한 단체 위주로 이뤄진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단체들에 대한 지원이 적다.
예산 지원 대상인 11개 종목에 포함되지 못한 종목들은 승강제에서 점점 도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과거 엘리트 스포츠가 가졌던 폐단이 재현되는 구조가 안타깝다.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선 안 된다. 건강한 스포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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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육성해 공정성 확보”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국내 체육계는 오래 전부터 승강제 도입을 염원해왔다. 다만 전국적으로 리그가 확대되고 경기 수가 크게 늘어나다보니 운영에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경기를 안정적으로 이끌 심판 요원이 너무 부족해 판정으로 항상 시끄럽다. 강원도에서 경기를 마치자마자 부산 출장을 가는 심판들도 부지기수다.
심판들이 강행군에 집중력을 갖고 경기를 맡기 어려운 지경이다. 소수의 심판이 많은 경기를 소화하다보니 이해관계에 얽힐 가능성도 크다. 과거 스포츠윤리센터에 접수되는 사건 중 상당수가 판정에 대한 시시비비였다. 결국 승강제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선수만큼이나 좋은 심판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동네 영웅 발굴 노력”
김현정 작은이야기발전소 대표(스포츠문화콘텐츠 박사)
스포츠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서 시·군·구 종목단체가 만들어야 할 건 경기장 안팎의 영웅이다. 단체는 팬이 지역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야기 주체’가 되도록 참여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경기장을 찾고, 자신이 느낀 열정과 감동을 스스로 발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오늘 경기 정말 감동적이었다”는 진심 어린 팬의 한 마디가 수많은 홍보보다 더 강한 울림을 만든다. 동시에 ‘우리 동네 영웅’을 발굴해야 한다.
기준은 실력이 아니라 서사다. 늦깎이 도전, 부상 극복, 지역을 위한 헌신 같은 이야기가 있는 선수를 찾아내고, 그 이야기를 지역의 자산으로 키워야 한다. 언론 인터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선수의 삶을 지역 공동체의 이야기로 엮는 것이다. 팀 이름보다 선수들의 스토리텔링이 더 오래 기억된다. 마지막으로 두 이야기를 연결해야 한다. 팬이 선수를 이야기하고, 선수가 팬에게 화답할 때 관계는 공동체가 된다. 경기장 밖의 영웅과 경기장 안의 영웅이 만나면서 승강제는 단순한 경기를 넘어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데일리-한국스포츠과학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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