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나혜, 조금은 불친절한 익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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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구나혜, 조금은 불친절한 익숙함

문화매거진 2025-11-06 16:24: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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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구나혜 작가 / 사진: 구나혜 제공
▲ 문화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구나혜 작가 / 사진: 구나혜 제공


[문화매거진=김주현 기자] “영감의 원천이요? 모르겠어요. (웃음) 제 경험이 아닐까요? 스쳐 가듯 보는 것들에 대한 경험이 쌓여서라고 할까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상과 제 작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어떤 고리들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거기서 드는 '거부감'이 있는데요. 전시장 내 무작위적인 배치라든지, 어떤 사물들이 갑자기 등장했을 때의 거부감이 제 일상을 침범하거든요. 그걸 제 작업으로 전환하려고 해요. 전환을 통해 거부감을 해소하려 하고, 작업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지요. '연결' 지점 고려하긴 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모 전시에서 ‘포용적이고 유연한 작업을 선보였습니다’라고 해도 결국 오프닝에 가면 등산복 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어오시지는 못하잖아요. 깔롱진 옷을 입은 미술인이나 들어오지. 뭐 그런 거요.”

얼마 전 서울 성북구 BCL(BLACKCUBE LAB)에서 개인전 ‘Curing’을 마친 구나혜 작가를 만났다. 주로 레진을 활용해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그는 사물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또다른 개인 프로젝트로는 도시에 버려진, 덩그러니 놓인 일종의 친숙한 조형물을 서치하며 이 두 사이의 연결성을 고민 중이다. 최근 들어선 도시에 버려진 조형물을 사물로 바라보며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지지 않는 어떤 연결고리를 찾았다. “마음대로.”

▲ 'Curing' 전시 전경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 'Curing' 전시 전경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제가 본 레진의 특성이 사물과 연결된다고 생각해 이 재료를 쓰고 있는데요. 레진을 만들 때 틀을 경화시키는 과정에서 내부가 투명하게 보임으로써 어떤 사물이 이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명이란 가능성이 없어지고 외관으로만 파악하게 되거든요. 이때 제가 사물을 사물로써 인식할 수 있다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레진의 투명성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연결이 되겠다 싶은 찰나에 조형물을 보고 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고요. 마치 카페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밖에 그냥 두는 것처럼요. 조형물 역시 그렇게 느껴져서 레진과 사물이란 키워드가 또 그런 식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그가 ‘Curing’에서 선보인 작업물이 이와 궤적을 나란히 한다. 크록스, 거울 등 일상 속 무덤덤하게만 느껴지는 어떤 사물들이 구나혜의 ‘육체 노동’이 담긴 레진과 붙어 새로운 감각을 자극한다. 깜깜한 어둠 속 야광 안료가 펼쳐지는 어떤 신비로운 공간이, 각자로부터 신비로운 해석을 자아냈다.

“이전 전시에서는 공간 제약 탓에 야광을 확실히 막을 수 없던 게 아쉽더라고요. 그때도 호스에 레진을 채우는 게 재밌었어요. 이걸 활용해서 픽셀처럼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그 정도의 생각이 있었는데, 공간을 물색하던 중 BCL이란 공모에 선정이 되어 ‘Curing’을 열었죠. 야광 작업이 블랙큐브와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제가 고민하던 사물과 레진을 엮는 과정을 전시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해서 다른 작업도 준비했습니다.”

깜깜한 곳, 야광에 의존해 감각을 깨우는 전시, ‘Curing’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그렇다. 예쁜 액자에 담긴 작품을 캡션과 함께 천천히 둘러보지 못하는 곳. 구나혜가 꾸린 BCL은 왜 이렇게 불친절할까? 

▲ 작품 'Curing'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 작품 'Curing'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제 작업은 누군가를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전시 왜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분들은 ‘제 작품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요’라고 하시는데, 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한 이유가 제 작업을 전시장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포토샵으로만 봤던 그 스케치를 구현할 수 있는가? 그걸 보고 싶었던 거죠. 제가 조금 더 큰 곳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전시한다면 고려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지금 이 공간에서라면 조금은 불편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력을 쌓아가는 단계이기도 하고요.”

이는 작가의 판매론(論)과 맞닿아 있다. 작가라면 의례 듣는 친숙한 말. “작품 판매는 고려 안 하세요?” 문화매거진의 불친절한 물음에 그는 “판매를 고려해본 적은 없다”고 답했다. 

“요즘 많이 듣는 질문이네요. (웃음) 판매를 고려했을 때 생기는 제한들이 있잖아요. 구매자를 생각해야 하고, 이동 가능한 재료여야 하고... 그런데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거든요. 제가 원하는 걸 확신하게 되니 오히려 판매에 대해 생각 안 하려고 작업하는 것 같아요.”

결국 구나혜가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 '오래 하기'. 오래 하기 위해서는 친숙한 일상으로 가는 방안을 계속 강구해야 한다.

“저는 종종 ‘일상 속 공간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동료 작가들에게 이야기하는데요. 그럼 그들은 ‘준비되지 않은 시민들이 관람객이 될 자격이 있느냐’고 물어요. 그들이 제 작품을 보고 ‘이게 뭐야?’ 하면 상처가 되긴 하니까요. 일상으로 가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엔 한 공연 기획자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공연은 하나의 결과물로 평가받는 게 되게 크대요. 그래서 작가들은 전시를 통해 어떤 궤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좋아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도 계속하면 되겠네. 그럼 언젠가는 내가 취향에 맞는 이가 있을 것이고, 그들이 날 기억해주면 되겠네’란 생각을 했죠.”

그래서 되려 ‘레진 작가’로 기억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지속성을 위한 기억이 필요하다면, ‘일상 속 한 장면이 구나혜의 전시에서 본 듯한 그런 느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 작품 'mirror'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 작품 'mirror'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모든 이의 기억에 남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작가는 결국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야 다음이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제 작업이 일상과 겹쳐 보였으면 좋겠어요. 일상 속 한 장면이 구나혜의 전시에서 본 듯한 그런 느낌인 거죠. 사실 기억된다는 건 무서운 일일 수도 있거든요. 어떤 이미지로 박히니까요. ‘레진 작가’로 기억되면 제가 다음에 다른 거 할 땐 좀 그러니까 (웃음) 제 작업 자체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올 한 해는 ‘레진을 붓는 사람’이었고, 내년은 ‘레진을 부을 사람’이란다. “호스에 레진을 채우는 일이 꽤 오래 걸렸어요. 재료비를 마련하고 작업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사다리 타고 올라가 레진을 붓다 보니 1년이 가더군요. 이러한 육체적 노동에 압도당해서 작업 생각을 많이 못했지만 남은 연말은 서치, 독서, 영화와 함께 채워나갈 것 같아요. 2026년엔 여전히 레진을 채우고 있을 거고요. (웃음) 올해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신중한 결정을 해나가는 시기가 될 것 같아요. 개인 작업과 프로젝트의 연결성을 찾는 것도 좀 더 해보고요.”

‘인간 구나혜’보다는 ‘작가 구나혜’가 성장하길 바란다는 그는 작업에 대한 열정을 내비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스스로에게 친절하되 불친절한, 작업이 ‘습관’처럼 박히길 바란다는 작은 욕심. 본인의 상태를 살펴 가며 ‘이렇게 쉬어도 될까?’ 싶을 때 푹 쉬고, 이를 디딤돌 삼아 더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큰 포부.

“제게 작업은 어떤 존재인지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습관처럼 계속해야 하는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습관이 아닌 것 같거든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안경을 쭉 썼는데 아직도 세수하고 나면 가끔 미간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안경테를 올리는 듯한 행동을 할 때가 있어요. 이런 습관이요. 작업이 습관이 되면 재료비, 환경 등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업실에 있어야만 작업이지! 이게 아니라 연필이 있으면 그걸로 다른 작업을 구상하고, 이런 거죠.”

▲ 작품 'bae'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 작품 'bae' / 사진: 김해찬, 보정: 김해찬


[개인전]
2025 Curing, BCL
2024 Couple, 소공스페이스 
2024 NEMO, 잇다스페이스 

[단체전]
2025 fins, imf 

[프로젝트] 
2024 캡션되기 Closed captioning, 광명문화재단 #광명곳곳(시각) 투어 프로젝트
2023 TAT faction 기획 및 참여작가 
2023 아르코 창작의 과정-공공예술 기획, 진행 (지원)
2023 아르코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리서치 비평 (지원)
2022 Trafo exhibition, Trafo, Jena, Germany 참여작가

[레지던시] 
2024 고양 해움 3기 레지던시 입주작가
2022 Residency Arts & Science Residency TRAFO Jena, Jena, Germany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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