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서울의 주거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실수요자들이 월세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전세 공급이 급감하고 월세가 급등하면서 임차 시장은 불안정해졌고, 가계의 현금 흐름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서민 주거비의 급등은 소비 위축과 내수 둔화를 초래하며,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공공임대 확대와 금융·세제 정책의 정교한 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수요자, 월세 경쟁에 내몰리다
국토교통부의 9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 전월세 거래 23만745건 가운데 월세 비율은 65%(15만670건)로 절반을 넘어섰다. 전세를 끼고 집을 매입하던 ‘갭투자’ 수요가 규제로 사라지면서 전세 공급 기반이 무너졌고, 임차 시장 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 씨(32)는 10월 초 전세 만기를 맞았지만 보증금 인상으로 새 전셋집을 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월세 90만 원짜리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이씨는 “매매는 엄두도 못 내고 전세도 부담돼 결국 월세를 택했다”며 “요즘은 월세 경쟁이 치열해 매물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전세난’이 시장을 압박했다면, 이제는 ‘월세난’이 세입자를 몰아세우고 있다. 실수요자들은 선택권이 줄어드는 시장에서 점점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다.
◇유동성 마른 가계, 소비 여력 위축
KB부동산 월간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지난 10월 기준 7.15%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가 세입자 가계의 현금 흐름을 압박하면서 ‘생활비 폭탄’이 현실화되고 있다.
내년 출산을 앞둔 노원구 거주 박모 씨(31)는 “생애 최초 특별공급 청약을 계속 넣고 있지만 서울은 전부 떨어진다”며 “월세가 너무 올라 부담이 커 관리비·대출이자까지 합치면 한 달에 200만 원 넘게 나가 저축은 꿈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
높아진 월세는 가계의 소비 여력을 직접적으로 축소시킨다. 이는 곧 내수 둔화와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거비 급등은 단순한 부동산 시장 이슈를 넘어, 국민경제의 유동성 순환 구조를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월세 전환 가속…주거 양극화 불가피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옮겨가는 임대 시장 변화는 이제 자산 축적 가능성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고 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열린 ‘2026년 건설·자재·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전세 물량 감소와 월세 수요 증가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2026년 전국 전세가격이 4%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주거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임대와 주거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며 “단기 보조금보다 장기 거주가 가능한 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대차 시장 불안은 결국 사회 전반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는 금리·세제·공급정책을 함께 조율해 시장 안정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거비 격차, 자산 양극화의 촉매 되나
서울의 주거비 급등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조차 월세 전환 압박을 받으면서, 주거비 격차가 자산 격차를 가속하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의 확대와 금융·세제 정책의 정밀한 조정 없는 악순환을 경고한다.
주거비 부담 완화는 단순한 생활 안정이 아니라, 서민과 실수요자의 삶의 기반을 지키는 핵심 경제정책이다. 구조적 접근 없이는 서울의 주거 불균형은 앞으로 더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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