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를 둘러싼 헌정적 경계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쟁점은 관세의 합법성 여부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 긴급권 남용 △사법부 견제 한계 △행정부 능력을 동시에 시험하는 ‘미국 통상질서의 헌법적 위기’다.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트럼프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다수 국가에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위헌이라는 소송이 연방대법원으로 올라오자, 미 사법부는 '만약 불법이라면, 환급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냉정한 질문에 봉착했다.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5일(현지시각) 구두변론에서 “수십조 달러에 달하는 관세를 환급해야 한다면 행정적 혼란이 불가피하다”며 “이게 실제로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원고 측 대리인 닐 카탤은 “대법원 판결 당사자에게만 자동 환급이 적용되고, 나머지는 행정항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복잡하지만, 행정적 어려움이 헌법 판단을 지연시킬 이유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는 곧 '행정 부담은 법치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세 하급심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IEEPA 해석에 제동을 걸었다. 관세 부과를 “경제 긴급상황”으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의회의 통상권을 침해한 대통령의 독단적 조세행위라는 이유였다.
이번 연방대법 심리는 따라서 단순한 통상분쟁이 아니라 대통령의 경제권력 한계를 다시 규정하는 ‘권력분립 판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법의 원칙’과 ‘경제 현실’이 정면 충돌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초기엔 “패소하면 나중에 환급하면 된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소송이 장기화되자 “환급은 재정 파탄을 초래할 것”이라며 논리를 뒤집었다.
그러자 카탤은 “환급 가능성을 근거로 관세 집행정지를 거부해놓고, 이제 와서 환급 불가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반박했다.
환급 절차는 행정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체제 몰락의 신호탄에 가깝다. 이미 납부된 관세의 실제 납부자(수입업체·중간 브로커·통관대행사)를 식별해야 하고, 관세·국경보호청(CBP)은 통상 처리 규모의 수십 배를 감당해야 한다.
또한 납부 후 180일 이내 제기해야 하는 행정적 항의(Administrative protest) 기한이 지나면 환급 자격을 잃을 수 있다.
만약 연방대법 선고가 내년으로 밀리면, 대다수 수입업체는 법적 기한을 놓치게 된다. 이는 곧 “위법하더라도 사실상 돌려줄 수 없는 구조”라는 현실적 모순을 가져온다.
이미 월가에서는 이 리스크를 거래화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부 투자은행이 ‘관세 환급 청구권’을 할인 매입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수익을 얻는 구조의 상품을 설계 중이다. 사법 리스크가 금융상품으로 전환된 셈이다.
연방대법은 이번 사건을 행정사건이 아닌 헌정사적 선례로 인식하고 있다. 보수·진보 대법관 모두 “IEEPA가 대통령에게 상시적 관세 결정권을 위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으며 이는 향후 백악관이 의회 승인 없이 관세·수출입 규제를 발동하는 ‘통상 행정의 일방주의’를 제한하는 판례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연방대법이 환급 문제를 판결문에 포함시킬지 여부는 미지수다. 사법부가 직접 환급 구조를 명령하면 행정부의 재정·통상 집행 능력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현재로써는 '위법 판단은 명확히 하되 구제 범위는 제한하는 절충형 판결'이 유력하다. 이 경우, 판결은 “원칙의 승리”로 기록되지만, 행정부는 여전히 “집행 불가능한 원칙”을 떠안게 된다.
이번 재판은 미국 사법체계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분수령이다. 연방대법이 위헌 판단을 내린다 해도, 헌법 원칙을 행정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법치주의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는 단순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통상정책을 심판하는 재판이 아니라, 미국 행정국가(State of Administration)의 신뢰와 역량을 시험하는 법정(法廷)이다. 연방대법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이번 사건은 미국 헌정사에 분명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법치주의’라는 국가의 대원칙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법을 현실로 구현할 행정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원칙은 선언에 불과하다. 이번 재판은 행정권의 한계를 넘어선 권한 행사에 대한, 사법의 냉정한 경고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는 무너질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행정이 법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번 사건이야말로,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할 자격을 법의 이름으로 증명해야 하는 ‘통상법의 시험지’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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