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을 둘러싸고 헌정사상 유례없는 논쟁에 5일(현지시간) '본격' 돌입했다.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은 이날 구두변론에서 트럼프 행정부 측을 몰아붙였다. 고서치 연방대법관은 “의회가 일단 대통령에게 넘긴 권한은 되찾을 수 없다. 이는 행정부 권한의 지속적 팽창으로 이어지는 일방향적”이라며 대통령의 긴급권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이어 그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의 조세권이 행정부에 흡수되는 것은 헌법이 의도한 균형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IEEPA는 대통령이 국제 거래를 ‘규제(regulate)’하거나 ‘차단(block)’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관세(tariff)’라는 단어는 법문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근거로 중국을 포함한 30여 개국에 10~20%의 관세를 부과했다.
정부 측 변호인 존 소어는 “수입을 규제한다는 것은 곧 관세를 포함한다”며 “역사적으로 관세는 가장 전통적인 무역 규제 수단”이라고 주장했지만, 자유주의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은 즉각 반박했다.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은 “의회는 ‘규제(regulate)’와 ‘과세(tax)’를 별도로 사용해왔다. 대통령이 ‘규제’라는 표현 하나로 조세권까지 행사할 수 있다는 해석은 입법취지의 왜곡”이라고 꼬집었다.
케탄지 브라운 잭슨 연방대법관은 “IEEPA는 1917년의 ‘적국통상법(TWEA)’의 남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한 법률”이라며 “의회는 오히려 대통령의 긴급경제권을 제어하려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 역시 “미국 내 조세 부과는 헌법상 의회의 핵심 권한”이라며 대통령의 통상조치가 의회의 조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그는 “어떤 상품이든, 어떤 국가든, 얼마든, 얼마나 오래든 대통령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중대 사안의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규모 경제적·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반드시 입법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최근 미국 사법부의 일관된 법리다.
트럼프 행정부는 IEEPA의 '비상사태' 조항을 근거로, 중국의 펜타닐 수출 통제 실패를 이유로 10% 기본 관세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연방대법관들은 '비상사태'의 범위를 둘러싸고 행정부의 해석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은 “대통령이 무역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데, 왜 1% 관세는 못한다고 보느냐”고 원고 측에 물으며 현실적 구제 범위를 물었지만, 이는 오히려 의회의 합리적 위임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역설적으로 부각시켰다.
새뮤얼 얼리토 연방대법관은 “만약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관세를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권한은 정당한가?”라고 물었다. 이는 긴급권의 경계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되살린 것이다.
이번 소송의 법적 판단 뒤에는 거대한 행정 현실이 기다린다. 현재까지 IEEPA 관세로 징수된 금액은 약 900억 달러(약 130조3290억원)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판결이 내년 6월로 미뤄질 경우 이미 7500억(약 1086조2250억원)~1조 달러(약 1448조3000억원) 규모의 관세가 누적돼, 이를 되돌리는 것은 심각한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럿 연방대법관은 “환급 절차는 완전한 혼란(a complete mess)”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는 앞선 변론에서 이미 드러난 ‘법의 원칙 vs 행정의 현실’의 갈등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이번 재판은 미국 헌법이 행정부의 경제권력 확장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보수 연방대법관조차 대통령의 권한 집중을 우려할 만큼, 이 사건은 행정부가 통상·조세 영역에서 입법부의 권한을 잠식해온 지난 수십 년간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시그널이다.[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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