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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올해 1145억 3800만원을 편성한 ‘공공건축물그린리모델링 사업’ 예산을 내년 전액 삭감해 지출구조조정 실적에 포함했다.
하지만 예산안을 뜯어보니 ‘공공건축물그린리모델링 2.0’이라는 이름의 사업을 새로 만들어 2012억 1800만원을 편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사업의 실질적인 내용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음에도 이름만 바꿔 예산을 오히려 증액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첨단전략산업특화단지기반시설구축지원 사업 예산 51억 1400만원을 지출구조조정했다고 보고했지만, 내년엔 똑같은 이름의 별도 신규사업에 200억 9900만원을 편성했다. 예정처는 “지출구조조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국민의 이해를 왜곡할 수 있는 요소”라고 꼬집었다.
당장 내년 예산은 줄였지만 총사업비를 감액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는 지출을 단순 연기한 셈으로, 실질적인 지출구조조정 성과로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국토교통부의 가덕도신공항건설 사업은 부지조성공사 수의계약 절차가 중단되면서 사업추진도 지연돼 내년 예산안에선 2750억 4600만원을 감액 편성했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 기준으로 이 사업의 총사업비는 올해와 같은 13조 7000억원에 달한다. 국토부의 김포~파주고속도로 사업은 내년에 176억 5400만원을 깎았지만 내년 예산안 기준 총사업비는 2조 1075억원으로 올해보다 오히려 20억원 증액되기도 했다.
애당초 사업 예산이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지출구조조정으로 삭감한 것처럼 포장된 경우도 여럿 확인됐다.
국토교통부의 스마트건설기술개발사업(R&D)은 올해 예산 180억 4900만원이 전액 감액됐는데, 이는 올해 완료된 R&D사업으로, 지출구조조정과 무관하게 내년 예산안엔 편성계획이 없었던 사업이다. 보건복지부의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 사업 291억 4400만원 △보건의료 마이데이터 활용기술 연구개발 및 실증(R&D) 사업 83억 3300만원 △의료기관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실증 및 도입 사업 150억원 △포스트 코로나시대 적정수혈을 위한 의료기술개발(R&D) 38억 4000만원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후유증 조사연구(R&D)사업 41억원 등도 마찬가지다.
기재부의 기획재정정보화사업 예산(21억 3400만원) 역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지출구조조정의 사례로 꼽혔다. 교체 시기가 도래한 노후 기기가 감소하면 예산도 덩달아 감소한다는 점에서 지출구조조정이라기보다는 실소요에 맞춘 예산 감액으로 봐야 한다는 게 예정처의 지적이다.
지출 구조조정을 하지 말았어야 할 사업까지 ‘칼질’ 대상이 된 경우도 있다. 상속·증여세 부과에 활용하는 국세청의 부동산 감정평가 사업이 대표적이다. 국세청은 이 사업 예산을 올해 95억 9200만원에서 내년 67억 1400만원으로 30% 대폭 깎았다. 초고가 아파트와 꼬마빌딩 등의 가치를 시세보다 낮게 신고해 상속·증여세를 줄이는 편법을 막고 공정과세·세수증대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사업이나 자발적 감정평가가 늘었다는 게 감액 이유다. 예정처는 공정과세 취지를 고려한 예산 감액의 적정성 재검토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공식적인 지출구조조정 발표가 나온 건 윤석열 정부 때부터로, 새 정부의 내역 공개에 따라 지출구조조정의 실체 없음이 확인됐다”며 “구조조정을 한다면 ‘불요불급한 사업’이라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원칙과 기준부터 재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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