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대규모 관세 부과 조치의 적법성을 본격 심리하기로 하면서, 국제 통상 질서에 새로운 변곡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행정부의 정책을 되짚는 수준을 넘어 향후 미국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운용하는 방식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평가된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이번 사안이 단기적인 금융시장 충격보다는 중장기적 교역 불확실성을 키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 투자전문가는 "만약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패소로 결론 내릴 경우, 기존 무역법에 따라 제한적 관세 부과는 가능하겠지만,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광범위한 관세는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당시 부과된 관세 가운데 일부는 환급 절차가 불가피할 수 있으며, 이는 약 2000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미국 연간 재정적자의 10% 수준으로, 정책적·재정적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시장 전문가는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과 체결된 합의가 즉각 무효화되지는 않겠지만, 법적 근거가 바뀌는 만큼 세부 조항 재조정은 불가피하다"며 "통상 정책의 불확실성이 재차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같은 분석은 미 대법원의 결정이 단순히 '트럼프 관세'의 위헌·합법 여부를 가리는 법률적 판단을 넘어 차기 행정부의 대외통상 전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 아래 철강, 알루미늄, 반도체, 자동차 부품 등 핵심 산업군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자국 제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WTO 규범과 충돌하고, 동맹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하급심인 국제무역법원과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비상경제권한을 남용한 불법 행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이 이를 확정할 경우, 미국의 대외통상 정책은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산업계 역시 이번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철강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받았으나, 추가 협상을 통해 일정 부분 면제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러나 향후 법적 근거가 사라질 경우 기존 협정의 조항들이 재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세 체계가 불안정해지면 교역과 환율 변동성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며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통상 정책의 변화는 곧바로 실물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단기간 내 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연구원은 "미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고, 실제 정책 변화가 현실화하기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며 "이 사안을 단기 변동성 요인보다는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향후 판결 결과와 정책 대응 방향에 따라 시장의 무게 중심이 바뀔 수 있다"며 "이번 사안은 단순한 통상 이슈를 넘어 글로벌 교역 질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이벤트'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대법원 심리가 향후 대선 국면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한 이상 자국 우선 통상 기조가 더욱 강화될 수 있으며, 반대로 법적 제약이 강화될 경우 행정부의 관세 정책 운용 여지는 크게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이에 따른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달러화는 주요 통화 대비 강보합세를 보였고, 원·달러 환율 또한 관망세 속에서 소폭 상승세로 돌아섰다. 수출주 중심의 국내 증시는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향후 미국 대법원 판결과 이에 따른 정책 조정은 단순히 미국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가치사슬(GVC)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번 이슈를 장기적인 전략 수립 과정에서 면밀히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