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648년 인도, 타지마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첫날 새벽. 성벽을 등지고 선 두 근위병, 휴마윤과 바불은 “말하지 말고, 침묵하라.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 아래 마주 선다. 보초 임무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임무였다. 그 선택의 무게는 곧 그들의 삶, 우정, 아름다움, 그리고 의무에 대한 관념을 영원히 바꿔 놓는다.
극작가 라지브 조셉은 어린 시절부터 타지마할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들은 전설과 신화에서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의 출발점을 찾았다. 초기에는 군상극으로 구상했지만, 두 근위병이라는 소박한 설정으로 축소하며 인간과 체제, 명령과 양심의 충돌을 보다 예리하게 탐구한다. 타지마할이라는 역사적 배경은 사랑의 상징이 아닌, 권력과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사랑으로 세워진 기념비가 결국 권력의 상징이 되어버리는 역설은, 평범한 두 사람의 눈높이에서 조명된다.
연극은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선사하며 인간사의 지난함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서열과 규율을 신념처럼 따르는 휴마윤과, 별과 새, 발명을 이야기하며 밤을 새우는 호기심 많은 바불의 대화는 소소한 유머로 시작되지만, 곧 체제의 압박과 부딪히며 돌이킬 수 없는 변화로 이어진다. 관객은 그들의 선택과 책임을 지켜보며, 찬란함의 이면에 숨은 인간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된다.
2017년 이후 8년 만에 돌아온 이번 국내 재연에서는 배우들의 호흡이 작품의 생명력을 결정짓는다. 최재림과 김동원이 번갈아 휴마윤을 맡아 내공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이승주와 박은석이 바불의 호기심과 에너지를 섬세하게 구현한다. 장면의 온도를 조절하는 그들의 호흡은 관객을 끝까지 극 속으로 끌어들이며, 침묵과 간극이 곧 서사가 되는 연극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2015년 뉴욕 초연 당시, 한 달 남짓한 공연 기간 동안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평단과 관객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대담한 구성과 독창적인 소재, 두 배우가 선보이는 섬세한 호흡은 짧은 공연 기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다크 코미디와 잔혹함을 교차시키는 연출은 동시대 2인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타고난 예술가로 평가받는 극작가 라지브 조셉은 17세기 인도 아그라의 황제 샤 자한이 그의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건축한 타지마할에 얽힌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집필했다. 타지마할이라는 역사적·상징적 공간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선택, 권력과 명령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연극은 타지마할 공개 직전 새벽, 성벽을 등지고 선 두 근위병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사소한 농담과 친근한 대화로 시간을 보내지만, 체제의 명령이 현실로 다가오며 그들의 우정과 신념, 인간적인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는다.
연출 신유청은 인물 간 관계의 밀도를 깊이 있게 표현하며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언어적 억양 없이 보편적 인간 드라마로 접근하는 방식은 특정 지역적 색채를 넘어, 모든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로 극을 확장한다. 국내 초연 당시 관객과 평단은 배우들의 정교한 리듬과 긴장감 있는 호흡을 높이 평가하며, 극이 지닌 드라마적 서사가 관객에게 깊은 몰입과 여운을 남긴다고 평했다.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다크 코미디와 잔혹함을 공존시키며, 찬란한 아름다움 뒤에 숨은 인간사의 복잡함과 선택의 무게를 직시하게 만든다. 단 두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긴장과 침묵 속에서, 관객은 웃고 고민하며 결국 자기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극적 몰입, 바로 이 순간 타지마할의 벽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사의 정수가 당신을 기다린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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