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가 더 이상 석유와 관광만의 나라가 아니다.
두바이를 중심으로 AI, 데이터, 장기체류 거주정책, 글로벌 법집행 협력이 얽힌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다. 사막의 도시가 디지털 문명 전환의 실험실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아부다비의 AI 기업 G42는 UAE 전역에 걸친 데이터센터 확장 계획을 발표
11월 초,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아부다비의 AI 기업 G42는 UAE 전역에 걸친 데이터센터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총 용량은 200메가와트(MW). 단순한 서버 증설이 아니라, AI·클라우드 전쟁의 전선(戰線)을 사막 한가운데로 옮긴 셈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15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까지 73억 달러, 2029년까지 추가로 79억 달러를 투입한다. 미국 정부 역시 고성능 엔비디아 GPU 수출을 승인하며, UAE의 AI 전략에 힘을 보탰다.
이로써 두바이는 관광도시에서 디지털 인프라 중심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세계적 기업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지점이자, 에너지와 물류, 자본이 교차하는 지리적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UAE 정부는 이를 “AI 시대의 새로운 석유는 데이터다”라는 구호로 치환하며, AI 인프라와 사이버 보안을 국가전략의 중심에 세우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GPU·AI 반도체·서버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이 디지털 두바이 프로젝트의 협력 파트너로 진출할 기회가 커지고 있다. 반면, AI 인력 유출 및 기술 종속의 우려도 공존한다.
▲ 두바이 비자 사진
장기체류·비거주 비자 개혁, ‘살아보는 두바이’의 시대
한편 UAE 정부는 최근 비거주(non-working) 장기체류 비자 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이 제도는 단순 관광객을 넘어 ‘살아보는 두바이’, 즉 장기 거주형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하고 있다.
포르투갈·태국·그리스 등 유럽형 장기거주 정책을 벤치마킹한 UAE는, 1년 단위에서 최대 10년까지 체류 가능한 골든비자·프리랜서비자·리모트워커비자 제도를 시행했다. 대상은 기업가, 창작자, 투자자, 고소득 전문직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외국인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두바이는 전 세계 디지털노마드, 크리에이터,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몰리는 거점으로 부상했다. 한국인들에게도 비자 규제가 완화되며 “한 달 여행”이 아니라 “1년 체류”가 가능한 실험장이 되고 있다.
부동산·숙박·서비스 산업 전반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장기 체류 수요가 늘며 월 단위 렌털과 공유오피스 시장이 급성장하고, 외국인 대상 의료·교육 서비스도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생활비와 주거비 상승, 문화적·법률적 격차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특히 부동산 매입이나 창업을 조건으로 한 일부 비자 정책은 거품성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인도-UAE 외교 긴장… 금융 허브의 그늘
한편, 두바이가 국제금융 허브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법적 리스크가 다시 부상했다. 인도 정부가 자국 내 불법도박 및 자금세탁 사건인 ‘마하데브 앱(Mahadev App)’ 관련 피의자 송환을 요청했지만, 해당 인물이 두바이에서 잠적했다는 보도가 11월 초 인도 현지 언론을 통해 확산됐다.
이 사건은 6천억 루피(약 1조 원) 규모로, 인도-UAE 간의 긴밀했던 사법 공조 관계에 균열을 가져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UAE는 인도, 사우디, 미국 등과의 금융정보공유 협약을 맺고 있으나, 외국인 자산 보호에 유리한 법체계 때문에 여전히 ‘자금 피난처’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상황은 글로벌 투자자에게 양면적이다. 한쪽에서는 외국인 자본 유입을 촉진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 안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금융·블록체인·핀테크 분야의 대외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에게는 “법률 리스크 대비, 규제 환경 이해, 현지 파트너십 검증”이 필수 전략이 되고 있다.
‘사막의 실리콘밸리’ 실험은 시작됐다
지금의 두바이는 20년 전의 싱가포르, 10년 전의 상하이와 비슷하다. 하늘 높은 빌딩과 오일머니의 도시를 넘어, AI와 데이터, 장기 체류, 글로벌 자본이 교차하는 ‘사막의 실리콘밸리’로 변신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G42의 합작은 기술 패권을, 장기 비자 제도는 인적자본을, 그리고 인도와의 외교 이슈는 현실적 리스크를 보여준다. 즉, 기회와 불안이 공존하는 전환기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UAE가 석유 이후의 생존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본다. AI와 클라우드, 금융·부동산, 문화산업 등에서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지 못한다면, 두바이는 다시 ‘황금빛 환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중동 전체의 디지털 경제 축이 될 수도 있다. 그 중심에는 두바이가 있다. 사막의 바람이 이제 데이터의 열기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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