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여당의 '재판중지법' 추진을 공개 제지하면서, 검찰·사법개혁에 이어 당정 간 이견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차기 당권과 대권을 노리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뚜렷한 조직 기반이 없는 만큼, 독자 세력화를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3일 민주당이 추진하던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필요하지 않은 입법"이라며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말라"고 공개 경고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냐'는 물음에 "그런 셈"이라고 했다.
2일 "재판중지법을 이번 정기국회 중 최우선 방침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던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하루 뒤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대통령실과 조율을 거친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 일부에서는 여전히 재판중지법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지지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균택 의원은 통화에서 "정 대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본다"며 "야당이 계속 이 대통령 재판 중지 문제를 제기하고, 한 법관이 '재판 재개가 이론상 가능하다'고 언급하니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자는 차원이다. 개인적으로 정쟁 종식을 위해 통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대통령실은 또 대통령 관련 사건인 만큼 논쟁거리를 줄이는 차원에서 거부할 수 있는 것"이라며 "당도 옳고 대통령실도 옳은 것이지, 어느 한쪽이 틀리거나 독선적인 문제는 아니다"고 했다.
그는 또 "민주 진영 지지층의 시각에서는 재판중지법 추진이 더 다수 의견일 것"이라며 "대통령실은 반대편도 아우르고 국정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니까 원만하게 가기를 바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당도 (대통령실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청래, '대표 연임→총선 공천권 확보→대권 도전' 구상 염두
대통령실은 그동안 '검찰개혁추진단 구성', '특검법 개정안 수정 합의', '조희대 청문회' 등 주요 현안 때마다 여당에 '조용한 개혁'을 주문해 왔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여러차례 언론을 통해 "시끄럽지 않게 개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방법은 지혜로웠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에 5선 중진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당이 왜 이래'라는 말은 카톡방에서나 하라"며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여당을 향해 공개 경고를 이어가는 배경에는 정청래 대표의 '자기 정치'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연임→총선 공천권 확보→원내 기반 강화→대권 도전'으로 이어지는 구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경로를 자신도 밟겠다는 계산이다.
정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61.74% 득표율로 승리했지만, 이는 견고한 지지층보다는 '내란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힘입은 결과로 평가된다. 당시 '의심'(국회의원들의 마음)이 경쟁자였던 박찬대 의원에게 쏠리기도 했다. 그만큼 '독자 세력화'는 정 대표 앞에 놓인 과제로 남아 있다.
민주당 내에선 정 대표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친명계와 다른 독자 세력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친명계 핵심 관계자는 "정 대표가 본인의 독자 세력이 없다는 것에 위기감이 상당하다"며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하고, 이 대통령 지지층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해 조급함이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의 지지층을 흡수하고 싶어 하면서도 측근들과는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재명 영입 인재'이자 '기본사회 설계자'로 불리는 유동철 부산 수영지역위원장이 부산시당위원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사례도 주목된다. 유 위원장은 친명계 인사들이 주축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당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했지만, 유 위원장은 "부당한 컷오프"라며 공개 반발 중이다.
또 최근 정 대표가 부대변인 48명을 임명하면서, 당대표 경선 당시 자신을 도왔던 인사들을 대거 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 대표가 '더민주혁신회의', '국민주권전국회의', '더명' 등 친명계 조직은 경계하고 '조직화하지 않은 온라인 당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추상적인 강성 지지층에 기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의견을 취합해 들을 수 있는 통로가 온라인 댓글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불안감에 자꾸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실 "李, 이제 당대표 아닌 모두의 대통령"
대통령실은 정 대표의 이러한 행보를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로 보고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이제 당대표가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역시 당대표 시절 강성 지지층인 '개딸'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대통령이 된 만큼 특정 강성 당원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 전체의 민심을 듣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대통령은 대통령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중도 지향성을 갖는 게 큰 그림인 반면, 정 대표는 차기 당권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어서 강성 당원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구조적 차이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박 교수는 "이견이 곧 갈등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당 대표가 지지층에 호소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지방선거 공천 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 지지율이 꽤 높은 상황에서 대통령 측근을 안 챙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리뉴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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