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글로벌 TV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교체 주기 장기화, 중국 보조금 효과 소멸, 모바일 중심 시청 확산으로 수요가 되살아나지 못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 3분기 나란히 TV 부문에서 적자를 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관세 부담까지 겹치면서 하드웨어 기반 수익성이 흔들리자 양사는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가속, 적자 속에서도 투자를 멈출 수 없는 구조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TV 출하량은 4975만 대로 전년 대비 4.9% 감소했다. 3분기 기준 출하량이 5000만 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연간 기준으로도 1억 9600만 대 수준에 그치며 2년 연속 역성장이 전망된다. 중국 하이센스와 TCL은 가격 인하를 무기로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 삼성전자를 추격. 올해 3분기 출하 점유율은 삼성전자 17.2%, 하이센스 15.4%, TCL 14.9%, LG전자 11.7% 순이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영상디스플레이(VD)·생활가전(DA) 부문에서 약 1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프리미엄 TV 판매는 선방했으나 글로벌 수요 둔화와 미국 관세 부담이 수익성을 짓눌렀다. LG전자 TV사업본부(MS) 역시 같은 기간 3026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OLED 중심 고부가 전략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중국의 물량 공세가 거세진 데다 구조 재편 과정에서 발생한 희망퇴직 비용이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양사는 투자를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드웨어 판매만으로는 수익 방어가 어려운 구조가 굳어지면서 TV의 전략적 위상 자체가 달라지고 있어서다. TV는 더 이상 ‘영상 재생 단말기’가 아닌 광고·구독·데이터가 결합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추세다. 사용자 체류 시간을 확보해 수익원을 다변화하지 못하면 단가 인상이나 원가 절감만으로는 중국 저가 공세와 관세 리스크를 견디기 어렵다는 판단이 나온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대형화 흐름이 둔화하면서 가격 프리미엄을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사용자를 생태계 안에 붙잡아 광고·콘텐츠 수익을 지속 확보하는 플랫폼 락인(lock-in)이야말로 향후 수익성을 좌우할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먼저 삼성전자는 TV 라인업 전반에 AI 플랫폼을 확대 적용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초대형·프리미엄 중심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동시에 중저가 라인업에까지 AI 업스케일링, 개인화 기능을 확산하는 모습이다. 대화형 AI ‘비전 AI 컴패니언’을 확대 적용하고, 자체 OS 타이젠 기반 무료 채널 ‘TV 플러스’로 광고형 수익(AVOD)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와 동시에 OLED 모니터를 중장기 수익원으로도 육성 중이다. 글로벌 TV 시장이 역성장하는 상황에서 고부가 IT 수요가 몰리는 모니터 시장은 연간 80% 이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패널업체 진입이 지연되는 구간이라는 점을 기회로 삼성은 금액 기준 35% 안팎의 점유율로 시장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webOS 플랫폼 외연 확대를 TV 사업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단순 출하 대수 경쟁에서 벗어나 탑재 기기 기반의 광고·콘텐츠 수익 극대화에 방점을 찍은 구조다. 최근 3년간 7000만 대 이상을 추가 확보하며 현재 2억6000만 대 수준으로 생태계를 키웠고,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확대한다는 목표다.
webOS 기반 플랫폼 매출은 이미 1조원을 돌파,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유지 중이다. LG전자는 TV 판매는 일시적 부침이 있지만 플랫폼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광고·유료 콘텐츠 매출 증가와 함께 연말 성수기를 앞두고 프리미엄 OLED 중심의 믹스 개선을 추진해 수익성 방어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관세·원가 부담도 플랫폼 전환 가속화의 배경이다. 한미 협상 타결에도 세탁기·냉장고에 10% 보편 관세, 철강·알루미늄 함유 전자제품엔 최대 50% 품목 관세가 유지되며 제조 원가 압력이 높아진 상황. 세탁기·냉장고 원가에서 철강 비중이 약 30%에 달하는 만큼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요 부진 속 중국 업체의 세트 상향 평준화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하이센스와 TCL은 프리미엄 미니LED(LCD)까지 중저가 라인업에 확대 적용하며 가격·기술 공세를 병행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출하량을 전 분기 대비 약 10% 끌어올리며 삼성과의 격차를 3% 안쪽으로 좁혔다. 성수기 마케팅 확대, 관세비용 상승, 중국 공세 본격화가 4분기 수익성 개선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부가 수익이 가능한 플랫폼 모델 전환이 늦어지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윤성 옴디아 상무는 “중국 TV 업체 내부에서는 삼성을 끌어내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일 정도로 점유율 추격 의지가 거세다”며 “패널업체들에 ‘가격만 맞춰주면 더 많은 물량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업체들은 내년 월드컵 시즌에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한중국 업체와의 점유율 격차가 좁혀진 상황에서 플랫폼 전환의 성과가 가시화하지 못하면 한국의 TV 주도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제언한다. 업계 관계자는 “TV는 이미 ‘팔아서 버는 제품’이 아니라 ‘켜진 뒤에 벌어들이는 플랫폼’이 됐다”며 “삼성·LG가 지금 생태계 확장에 실패하면 한 번 뒤집힌 주도권을 다시 찾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향후 1~2년 안에 플랫폼 매출 비중을 키워 내는 기업만이 다음 사이클에서 수익 구조를 완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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