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계가 정부의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2026~2030)' 할당계획안에 대해 "기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 설정"이라며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피한 과제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산업계는 "속도보다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며 현실적인 감축 여력과 산업 경쟁력을 함께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해 철강, 정유, 시멘트, 석유화학, 비철금속, 화학섬유, 제지 등 8개 업종별 협회는 최근 정부에 공동 건의문을 제출하고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시한 감축 시나리오와 배출권 할당계획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계가 우려를 표한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제시한 2035 NDC 초안은 2018년 대비 최대 65%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2030년 목표(4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산업계는 "이 같은 감축률은 기술적·경제적 여력을 초과하는 수준"이라며 "정부의 일방적 설정이 산업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산업계는 특히 배출권거래제 4차 계획기간의 할당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는 기업별로 할당받은 배출권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초과분은 시장에서 구매해야 한다. 그러나 4차 계획기간에서는 감축 기준이 강화되면서 기업이 실제 배출량을 맞추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협회들은 "기후부가 제시한 안은 2030 NDC 산업부문 감축률(11.4%)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할당 감소를 반영하고 있다"며 "기업의 감축 역량을 초과하는 규제는 경영활동을 제약하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생산설비를 당장 친환경 설비로 교체하기는 어렵다. 감축 속도보다 투자 여력과 기술 수준을 반영한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과도한 감축 목표가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 경제적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종별 협회가 자체 산정한 결과에 따르면, 배출권 구매 부담은 철강 5천만t, 정유 1천900만t, 시멘트 1천800만t, 석유화학 1천만t 등 총 9천여만t 규모로 예상된다.
배출권 단가를 톤당 5만원으로 가정할 경우, 향후 4차 계획기간(5년간) 동안 기업이 부담해야 할 총 비용은 약 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회계상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 여력 축소·고용 위축·제품 경쟁력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산업계의 분석이다.
산업계는 탄소중립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 추진 방식에 있어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들은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은 산업계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다만, 실제 감축이 가능한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재정지원, 인프라 확충, 제도 개선 등 다차원적인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감축률만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하면 산업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며 "감축성과와 경쟁력 강화가 함께 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가 NDC 목표를 배출권거래제와 직접 연동하는 국가는 유럽연합(EU), 영국, 뉴질랜드 등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장기간의 감축 이행 계획과 산업 전환 지원 정책을 병행하며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감축 목표를 법제화해 단기간 내 실현을 추진하고 있어, 산업계는 "국제 기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압박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공동 건의는 단순한 반대 입장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방향이 산업 현장의 실제 감축 역량과 괴리돼 있다는 경고의 성격이 짙다. 특히 기후위기 대응이 장기 과제인 만큼, 감축 목표와 산업 전환의 속도를 어떻게 조율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감축목표 상향은 불가피하지만, 산업 생태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어야 실질적인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며 "정부가 산업별 로드맵을 세밀히 조정해 '과속'이 아닌 '지속가능한 전환'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2035 NDC를 공식 제출할 예정이다. 산업계의 건의가 반영될지는 미지수지만, 정부와 업계 간 협의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기후 대응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며 "정부와 산업계가 대립이 아닌 '공동 대응'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