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IRELAND
」
‘Dumbball action’(1983).
‘Broom Collection with Boom’(1978~1988).
다이닝 룸은 아프리카 사파리 가이드 시절에 수집한 동물 뼈와 뿔, 민속 오브제 등으로 채워진 작가의 사적인 분더캄머다.
예술가의 삶과 철학이 하나의 공간에 온전히 응축될 수 있을까? 개념미술가 데이비드 아일랜드(David Ireland, 1930~2009년)의 집이자 작업실, 작품 ‘500 캡 스트리트’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한 대답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역, 캡 스트리트와 20번가가 만나는 모퉁이에 자리한 주택 한 채.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낡은 건물이지만,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마치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벽에 붙은 포스트잇, 금고를 옮기다 생긴 흠집 옆에 단 청동 명패, 유리 아래 고이 보존된 먼지 자국. 예술가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손길과 사유가 스며 있는 ‘500 캡 스트리트’는 수수께끼 같은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동시에 이곳은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였던 그를 360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자연광이 스며드는 응접실은 호박색 바니시로 마감해 공간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는 조각 작품처럼 느껴진다.
‘Three-Legged Chair’(1978).
‘Copper Window(Circa 1978)’(1981).
회화를 전공한 아일랜드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예술가로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보험업자, 아프리카 사파리 가이드, 유물 수입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삶의 굴곡을 통과했고, 그 시간들은 오히려 예술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아일랜드는 전통적 회화와 조각에 몰두했던 초기 작품 활동을 지나 1970년대 중반에는 샌프란시스코 미술계에서 떠오르던 개념미술과 장소 특정 작업에 깊은 영향을 받으며 점점 재료와 공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75년, 우연히 캡 스트리트의 낡은 빅토리아풍 주택을 구입한 그는 처음엔 이곳을 스튜디오 겸 주거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샌프란시스코 개념미술관(MOCA)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아일랜드는 공간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단순히 건물을 보수하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드러내는 방식을 터득하고 500 캡 스트리트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집 자체를 총체적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대장정의 프로젝트가 막이 오른 것이다. 그는 기존 건축 요소를 덧칠하거나 감추기보다 벽지를 벗기고, 낡은 페인트 아래의 얼룩과 금을 드러내며, 벽지가 문을 가렸던 자국, 막혀 있던 계단에 이름을 붙였다. 이전 집주인들이 남긴 흔적마저 예술로 수용하며 고고학자처럼 집을 다뤘고, 실제로 자신을 ‘예술가이자 고고학자’라고 불렀다. 집 안의 공간은 아일랜드만의 방식으로 해석되고 구성됐다. 1층 다이닝 공간에는 긴 목공 작업대가 식탁처럼 놓였고, 주변에는 제각기 다른 의자들이 같이 어우러져 있다. 선반과 테이블 위엔 동물 해골과 뿔,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유물, 어린 시절의 가족사진, 콘크리트 북엔드 같은 사적인 오브제가 시선을 붙든다. 이 소박한 공간은 그의 친구들과 식사하고 대화하는 일상 행위마저 예술적 실천으로 변환시켰다. 요리나 정원 가꾸기 같은 행위도 그의 작업 세계 안에서는 회화나 조각과 동등한 위상을 지녔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자연광이 잘 드는 2층 방이 나타난다.
토치를 활용해 만든 샹들리에 ‘Fire Drawing’.
데이비드 아일랜드는 자신의 작품과 큐레이션한 수집품으로 게스트 룸을 꾸며 손님들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공간을 느끼고 해석하며 머물 수 있도록 했다.
2층 복도 뒷벽에 데이비드 아일랜드가 직접 고정한 좁은 나무 사다리를 올라야 닿을 수 있는 다락방.
벽, 천장, 바닥 전체가 반투명 바니시로 마감해 낮 동안 빛이 스며들며 공간 전체가 반짝이는 광학적 조각으로 변모했다. 데이비드 아일랜드는 공간 곳곳에 유약을 입혀 자연광과 양초, 가스등, 수제 조명이 만들어내는 빛의 흐름을 실험했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그 미묘한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바쳤다. 그의 다락방은 ‘스태빈 캐빈(Stabbin Cabin)’으로 불렸다.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들어갈 수 있는 이곳은 폐쇄성과 은밀함, 상상력이 교차하는 공간이자, 감각과 상징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아일랜드는 집 곳곳에 기념사진과 메모, 편지, 식기와 의자 같은 생활의 흔적을 아카이빙하듯 축적해 갔다. 그의 손길을 따라 흙, 나무, 철사 같은 일상적 재료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며 집 전체가 하나의 실험장이 됐다. 특히 집 안 곳곳에 놓여 있는 콘크리트 공들은 ‘덤볼(Dumbball)’ 시리즈로 반복과 물성, 시간의 누적을 시각화한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상징적 작품이다. 이렇게 하나의 공간이 예술로 작동하는 과정 속에서 데이비드 아일랜드는 탈장르(Post-Discipline), 비매체 설치(Non-Media Installation) 접근법을 추구하며 건축, 회화, 퍼포먼스, 고고학, 민속학까지 예술의 가능성을 넓혀갔다. 이 집은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모든 예술적 실천이 응축된 결정체로 조각이고 회화이자 기록이며, 실험자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초상화인 것이다. 아일랜드는 2009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그는 이 집이 유산으로 남길 원하지 않았다. 죽은 공간보다 살아 있고, 변화하고, 사람들이 찾아와 대화할 수 있는 장소였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후원가 칼리 윌리엄스(Carlie Wilmans)에 의해 이어졌다. 그녀는 이 집을 매입하고 캡 스트리트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500 캡 스트리트를 보존했다. 현재도 이곳은 살아 있는 예술 공간으로 기능하며,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작품과 문서들은 복원과 순환 전시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또 주요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어 아일랜드의 작업은 지금도 다양한 층위로 확장되고 있다. 데이비드 아일랜드의 유머와 집요함, 실험 정신, 따뜻함 그리고 사소한 것에 깃든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섬세한 시선까지 그 모든 것이 지금도 이 집에 또렷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의 말없는 대화들이 천천히 발화되고 있다. 살아 있는 예술 실험실 ‘500 캡 스트리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집의 외관은 아무도 이곳이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장소라고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하다.
방의 벽면은 석고를 드러낸 채 벗겨져 있다. 그 표면 위로 길게 뻗은 금은 아일랜드가 ‘벽 드로잉’이라 부른 시간의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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